내 삶의 길을 찾아서


날짜 2023-08-23 08:51:09 조회

인생길은 무시로 다양한 선택을 마주해야 하는 게임인 듯싶다. 련습없이 걷는 길이라 돌부리에 걸채여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야 하기에 사람마다 희노애락을 비틀어짜던 추억담이 있다. 어쩌면 그 이야기 속에 나 자신도 한몫 끼여있는 듯싶어 비위좋게 한번 엮어본다.
나는 소학교시절부터 미술재능을 뽐낸 형님의 영향을 받았다. 형님은 일요일마다 집구석에 합판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렸는데 어느 날 수염이 더부룩한 웬 늙은이를 그렸다. 살아숨쉬듯 아주 로맨틱했다. 썩 후날에야 그 늙은이가 문예부흥시기 대화가 다빈치라는 걸 알았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그때부터 형님의 그림솜씨에 감복된 나머지 나 역시 멋진 화가가 부러워 미술의 꿈이 움트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당시 인기몰이 그림책인 《홍등기》, 《사가풍》, 《홍색랑자군》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대조해 그렸다. 연필그림보다 철필그림이 무척 힘들어 한점을 그리는데 7, 8시간 골몰했다. 맑스, 엥겔스 초상도 그려보고 집 찬장유리에 채색화도 그려넣었다. 후에 나는 자신감이 생겨 신문에 실린 선전화를 참고해 두편을 그려 연길현문화관에 투고했다. 달포쯤 되였을가, 룡정시문화관에 다니던 형님이 출장차로 집에 들렀다.
“너 그림을 투고했더구나.”
내가 묻기 전에 형님이 먼저 말했다. 그리고 형님은 돌아앉아 온종일 엄마, 아버지와 두세두세 한담하다가 훌쩍 떠나갔다. 내 그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결국 나의 그림은 싹수가 보이지 않으니 다른 취미나 길러보라는 뜻이였다. ‘쳇, 그딴 미술이 뭐 그리 대단해서.’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장님 파밭 매듯 헛수고한 것이 억울해 공연히 집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그럴 즈음 우리 가족에 뜻밖의 일이 생겼다. 평소 시름시름 앓던 엄마의 병세가 심해졌다. 처음엔 눈앞에서 자꾸 거미줄 같은 검은 물체가 흔들린다더니 밤중에 놀라 깨여나 누군가 바깥문 두드리며 괴성을 지른다고 했다. 엄마가 앓을 적마다 무작정 의사집에 달려가 문을 두드리는 것도 한두번이지 사흘이 멀다하게 발작하는 병세 때문에 온 집 식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언젠가 온종일 장대비 쏟아지던 저녁무렵 또 엄마가 갑자기 앓아누웠다. 의사는 오자마자 혈압을 재이고 맥을 짚어보더니 병세가 위중하다며 빨리 연변병원으로 떠나라고 했다. 사처로 뛰여다니며 련계해 구급차가 강녘에 도착했으나 물사태로 길목에 멈춰섰고 외나무다리마저 어디론가 멀리 떠밀려가고 없었다. 이 위급한 관두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을청년들이 “빨리 강물에 들어서기오!”라고 소리쳤다. 난 아직 어려서 감히 끼여들 엄두를 못냈고 대신 마을청년들이 옷을 입은 채로 첨벙첨벙 물속에 들어섰다. 잠간사이에 강물은 허리를 쳤다. ‘쏴-’ 소리와 함께 거센 물살은 사정없이 담가를 멘 마을청년들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비장한 순간을 보다말고 난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아, 엄마가 죽으면 안돼.’ 난 무서움에 몸이 후들후들 떨었다. 그날 밤, 나는 날이 샐 때까지 이리뒤척 저리뒤척했다. ‘엄마는 어떤지, 아니 내가 의사공부하면 안될가? 엄마의 병을 보살펴주고 또 그처럼 앓는 사람들을 치료해준다면…’ 문득 떠오른 생각에 흥분된 나는 후닥닥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앉았다. 며칠 후 나는 연길서점을 찾아 《림상기초질병치료》란 책을 샀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서적을 얻어 밤도와 열심히 읽었다. 생소한 단락들은 리해되든말든 먼저 동그라미를 쳐놓고 모조리 외우는 방법을 썼다. 일년 반을 그렇게 공부하고 나서 모 병원 주치의사한테 붙어 문진실습을 했다. 헌데 그토록 즐긴 의학공부가 나와 인연이 없을 줄 누가 알았으랴… 우연히 해본 신체검사에서 색맹이란 진단이 나온 것이였다. 운명의 조롱 앞에 모든 희망이 순식간 물거품처럼 산산이 부셔졌다. 더는 의학공부를 할 수 없구나 하는 절망감이 가슴 한복판을 지꿎게 물어뜯었다. 나는 한동안 세상 모든 것이 귀찮아 책이고 뭐고 죄다 팽개쳤다.
“대학시험 준비를 하려무나.” 오리무중에 빠져 방황하는 나에게 형님이 ‘송강 급시우’ 마냥 준 힌트였다. 이어 대학에 붙어야 앞으로 자신의 설자리를 찾는다고 슬쩍 꼬드겼다. 그 말에 대뜸 축 처진 어깨가 건뜻 들렸다. 나는 다시 문과시험에 도전하여 결사적으로 공부했다. 드디여 대학입학 통지서를 거머쥐고 4년 동안의 공부도 원만히 매듭지었다.
문학공부에서 배운 형상사유라고 할가, 나는 부동산 분야에 출근하면서 집짓기와 글쓰기를 립체적으로 련결시켜 생각했다. 건물터전이나 종이장이 모두 반듯한 데 비추어 글짓기 줄거리는 철근콩크리트 형태를 닮아 바르고 또한 벽체 쌓는 일솜씨도 전반 문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의 글재간과 어슷비슷해보였다. 사실 완전히 다른 두 분야를 뒤섞어 해석한 것은 모름지기 몸은 부동산에 묶였지만 마음은 진작 글밭에 쏠렸기 때문이였다. 우물을 파도 한우물 파라고 했다. 나는 실무와 관련된 경제, 건축리론을 접촉하는 기회를 빌어 글짓기기초로 되는 자료수집에 정력을 쏟았다. 딱딱한 학술용어들은 피하고 문학성을 띤 흥미로운 이야기소재들을 전문 골라 목책이나 핸드폰에 기록해두었다. 곁들어 부동산정책을 담론한 글을 두루 쓰면서 시나브로 방송매체에 강연프로도 맡아했다. 워낙 가진 그릇이 곯아서 잰걸음해야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으니깐.
나의 본격적인 글쓰기작업은 세월의 바자굽을 빙빙 에돌아 퇴직 후에 찾아왔다. 언젠가 형님이 나보고 글을 한번 써보라고 했다. 나는 겉으로는 “이제 와서 될가요?”라고 했으나 속은 벌써 흥분했다. 하긴 습작 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여태껏 품어온 소원도 풀어볼겸 누이 좋고 매부 좋은데 왜 못할가. 새 출발의 결심을 다진 나는 첫편으로 생태환경을 다룬 <당신은 이 땅의 주인입니까?>라는 글을 써서 신문사에 투고했다. 설마 했는데 행운스럽게 발표되였다. 친구들의 호평에 반해 형님은 절레절레 도리질했다. 내용은 비록 좋으나 서두와 결말이 뒤바뀌여졌다며 작은 물방울을 통해 큰 강을 펼쳐보이는 창작법을 명기하라고 귀띔해주었다. 나는 사명감이 깃든 우환인식을 도출하는 데 주력했다. 가끔 글이 맞갖잖아 밤잠을 설치긴 해도 감농군마냥 땀 흘린 만큼 성과를 거뒀다. 몇해 사이에 금상, 은상을 여러번 탄 데 이어 작년엔 묵직한 대상수상자로 뽑혔다. “축하합니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리덕수 전임 주임의 치하를 곧장 받아안기엔 너무 버거웠다.
‘내 남은 여생엔 기꺼이 이 길을 걸으리라!’ 이런 결심을 굳힌 나의 사색은 지금 늘 글쓰기벌판을 찾아 헤맨다. 미숙한 날개짓은 과감히 따버리고 도약의 퍼덕임 소리를 한껏 푸르싱싱하게 표현하고저 나는 오늘도 수걱수걱 키보드를 치고 또 친다.   
작가:최장춘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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