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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민의 위대하고 빛나는 일생


날짜 2023-03-12 09:03:16 조회

우리 당, 우리 군, 우리 나라 여러 민족 인민들이 공인하는 숭고한 명망이 있는 탁월한 지도자, 위대한 맑스주의자,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외교가, 오랜 시련을 겪은 공산주의 전사,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의 걸출한 지도자, 당의 제3세대 중앙지도집단의 핵심,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의 주요 창시자 강택민 동지의 서거로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은 무한한 비통에 잠겼다. 지난해 12일 6일 오전, 중공중앙,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협, 중앙군위는 인민대회당에서 강택민 동지 추도대회를 성대히 거행했다. 대회는 전국 라지오, TV와 뉴스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되였다. 전국 상하, 여러 민족 인민들은 강택민 동지를 침통하게 애도했다.
강택민의 일생은 빛나는 전투의 일생이였다. 70여년의 혁명생애에서 그는 공산주의 리상에 대해 변함이 없이 확고했고 당과 인민에게 무한히 충성했으며 초지일관하게 당과 인민의 사업을 위해 분투했다.
당의 13기 4차 전원회의 이후 국내외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세계 사회주의에 심각한 곡절이 나타난 준엄한 시련 앞에서 강택민은 당의 중앙지도집단을 인솔하여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에게 긴밀히 의거하면서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수호하였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21세기에로 성공적으로 밀고나감으로써 영원히 마멸할 수 없는 공훈을 세우고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충심으로 되는 추대와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찬양을 받았다.
1926년 8월 17일, 강택민은 강소성 양주시의 한 애국지식인 가정에서 태여났다. 강택민은 어릴 때부터 애국주의사상과 민주혁명사상의 계몽을 받은 동시에 선비가문의 분위기 속에서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강택민은 일찍 양주동관소학교와 양주중학교에 다녔다. 양주중학교에서 공부하는 기간 고향이 일본침략군에게 점령당하자 그는 늘 매화령에 있는 명나라 애국명장 사가법의 묘소를 찾아가서 추모하고 사공사의 영련 “떨어지는 매화꽃잎은 망국자의 눈물이요, 이지러진 저 잔월은 늙은 신하의 마음이라네”를 읊으며 비분의 심정을 토로했다.
1943년, 강택민은 남경중앙대학 전기기계학부에 입학하여 진보적인 학생들의 항일애국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강택민은 상해교통대학 전기기계학부로 전학하여 공부하였다. 1946년 4월, 강택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전사로 되였다. 강택민은 적극적으로 당의 지하사업에 종사하였고 예봉을 국민당 반동통치에로 향한 반기아, 반내전, 반박해의 애국학생운동에 참가하여 혁명동지들을 엄호했다.
1947년, 강택민은 상해교통대학 전기기계학부를 졸업하고 상해량복실험공장에 가 사업하면서 공정사, 공무과장, 전무공장 주임, 동력작업장 주임 등 직을 력임했다. 이 기간, 그는 로동자대중과 청년회 야간학교 직업청년들 속에서 혁명선전사업에 종사하였고 1949년에 로동자대중을 조직하여 공장보호 활동을 전개하면서 상해의 해방을 맞이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초기에 강택민은 선후로 상해익민식품1공장 제1부공장장, 상해비누공장 제1부공장장, 제1기계공업부 상해제2설계분국 전기기구전문과 과장 등 직을 맡았다. 익민식품공장에 있는 기간에 그는 ‘광명표’ 식품브랜드의 연구, 제작과 창립을 책임졌다. 항미원조를 지원하기 위해 그는 중국인민지원군에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통졸임식품 생산을 조직하였다. 제2설계분국에 있는 기간에 그는 새 중국 최초의 국산 증기타빈발전기의 설계사업을 주관하였다.
1954년 9월, 강택민은 전근명령에 따라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 건설에 참가했고 1955년 4월에 모스크바 쓰딸린자동차제조공장에 가 실습하였으며 1956년 5월에 귀국한 후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에서 동력처 부처장, 부총동력사와 동력분공장 공장장 등 직을 력임했다. 1961년, 석탄공급이 딸리자 강택민은 동력보이라를 개조하여 원유를 태우는 대형 공사의 총지휘를 맡았고 공사는 성공하였다.
1962년, 강택민은 제1기계공업부 상해전기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전근되여 이 연구소의 과학연구 지도사업을 책임졌으며 당시 국가에서 급히 요구하는 JO2 소형 비동기 전기기계 계렬을 설계하는 임무를 주관하여 완수했다. 1964년과 1965년, 강택민은 선후하여 중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일본,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전기공업위원회 년례회의에 참가함과 아울러 국외의 전기과학기술 발전상황을 고찰하였다.
1966년 5월, 강택민은 무한열공기계연구소로 전근하여 소장, 당위 서기대리를 맡았으며 9월에는 당위 서기로 임명되여 원자력발전설비의 설계사업을 조직하였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강택민은 충격을 받았다. 1970년말, 강택민은 제1기계공업부로 전근되여 사업하다가 1971년에 중국 제1기계공업부가 로므니아에 파견한 전문가조 총조장을 맡고 중국이 원조하는 11개 공장 건설 사업을 책임지고 지도하였다. 1973년에 귀국하여 강택민은 선후하여 제1기계공업부 외사국 부국장, 국장을 맡았다. 1973년과 1974년, 강택민은 선후하여 중국대표단 부단장, 단장을 맡고 련방독일과 로므니아에서 열린 국제전기공업위원회 년례회의에 참가하였다. 1976년, 강택민은 대표단을 인솔하여 파키스탄에 가 중국의 원조로 건설하는 공장의 건설 상황을 고찰했다. 1978년, 강택민은 중국기계공업대표단 비서장으로 있으면서 유럽 6개국을 방문하여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기술수준을 빨리 향상시키고 제품의 세대교체를 다그치며 조합식 기술장비 제공 능력을 제고하고 기계제품의 수출을 확대하는 등 문제에 대해 깊이있게 사고하고 대책과 건의를 제기하였다.
1978년 12월에 소집된 중국공산당 11기 3차 전원회의는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는 것’을 과단하게 결속짓고 당과 국가 사업 중심의 전략적 전이를 실현함으로써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시기를 열고 새 중국 창건 이래 당의 력사에서 심원한 의의를 가지는 위대한 전환을 실현하였다. 1980년, 강택민은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 국가외국투자관리위원회 부주임 겸 비서장, 당조 성원을 담임하고 대외무역 확대, 국외 선진 기술과 설비 도입, 외자 흡수와 리용 등 면의 정책 제정에 참여한 동시에 국가가 광동, 복건 두 성에 대해 특수정책과 유연한 조치를 취하는 구체적 관철사업을 분관하고 경제특별구를 건설하는 준비사업에 참가하였다. 경제특별구를 설립하는 것은 당과 국가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진행한 위대한 독창적인 장거이자 이왕에 경험이 부족하여 처음부터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사물이기도 하였다. 1980년에 강택민은 선후하여 대표단을 이끌고 태국,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향항, 메히꼬, 아일랜드 등 나라와 지역을 고찰하여 수출가공구, 자유무역구, 변경경제구의 상황을 료해하고 그 속에서 중국이 경제특별구를 설립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경험을 연구, 섭취했다. 같은 해 8월, 강택민은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15차 회의에서 광동, 복건 두 성에 경제특별구를 설치하는 것과  <광동성 경제특별구 조례>에 관한 설명을 하여 회의에서 관련 의안을 심의, 통과하는 데 중요한 의거를 제공했다.
1982년 5월, 강택민은 전자공업부 제1부부장, 당조 부서기를 맡았고 1983년에는 부장, 당조 서기를 맡았다. 그는 생산 제1선에 심입하여 조사연구를 하고 전자공업의 ‘기초를 다지고 수준을 제고하며 질을 틀어쥐고 효익을 추구하며 여덟배를 늘이고 십년을 초월하는’ 발전방침을 제기했으며 전자공업의 구조조정과 기술개조를 조직, 지도하고 집적회로, 컴퓨터, 통신 및 시스템공사 등 중점 항목의 과학연구 및 개발과 생산 사업을 강화하여 전자공업이 국가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위해 더욱 잘 봉사하도록 했다. 1982년 9월, 강택민은 중국공산당 제1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85년, 강택민은 상해시 시장, 중공상해시위 부서기로 임명되였고 1987년에 중공상해시위 서기로 임명되였다. 그는 경제건설이라는 이 중심을 단단히 틀어쥐고 네가지 기본원칙과 개혁개방을 견지하였으며 물질문명 건설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에 깊은 중시를 돌려 상해의 개혁, 발전, 안정을 힘써 촉진했다. 그는 상해의 경제발전 계획과 도시건설 계획의 제정을 지도하면서 20세기말에 상해를 개방적이고 다기능적이며 산업구조가 합리하고 과학기술이 선진적인 고도의 문명을 갖춘 사회주의 현대화 도시로 건설하는 발전방침을 제기했다. 그는 포동 개발개방을 적극 지지하면서 포동을 국제화, 중추화, 현대화된 세계 일류의 신도시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면의 의견을 널리 청취하고 여러 면의 적극성을 충분히 동원하며 상해 경제와 사회 발전의 전략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민주당파 격월 좌담회와 언론, 리론계 격월 좌담회 등 제도의 수립을 창도했다. 그는 과학기술 혁신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데 중시를 돌리고 중대공정 결책전문가 론증제도를 구축했다. 상해의 대외개방을 확대하기 위하여 그는 상호 료해, 상호 신뢰, 호혜호리, 장기적인 고려의 대외경제 교류 발전의 네가지 원칙을 제기했다. 그의 창도하에 상해시정부는 해마다 인민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몇가지씩 하는 방법을 취하여 광범한 대중들의 의식주행 면의 실제문제를 힘써 해결하고 대중들의 생활을 개선했다. 1987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3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89년 봄과 여름이 바뀌는 시기 우리 나라는 심각한 정치풍파가 발생했다. 그는 기치가 선명하게 동란을 반대하고 사회주의 국가정권을 수호하며 인민의 근본리익을 수호할 데 관한 당중앙의 정확한 결책을 옹호하고 집행했으며 광범한 당원, 간부, 대중들에게 긴밀히 의거하여 상해의 안정을 유력하게 수호했다.
1989년 6월, 중국공산당 제13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다. 그는 회의에서 “당의 11기 3차 전원회의 후의 로선과 기본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반드시 계속하여 관철, 집행해야 한다. 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나는 두마디를 명확히 말하련다. 한마디는 확고부동하게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마디는 전면적으로 집행하고 일이관지하는 것이다.”라고 확고하게 제시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공산당 제13기 제5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1990년 3월, 제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발걸음을 다그쳐 중국특색이 있는 사회주의사업의 더욱 큰 승리를 이룩하자>라는 제목으로 보고를 했다. 보고에서 그는 전당에서의 등소평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 리론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하고 중국의 경제체제 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확정했으며 기회를 포착하고 발전을 다그치며 정력을 집중하여 경제건설을 춰세울 것을 강조했다. 중국공산당 제14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고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1993년 3월,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1997년 9월,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등소평리론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중국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건설 사업을 21세기에로 전면 추진하자>를 제목으로 보고를 하였으며 중점적으로 등소평리론의 력사적 지위와 지도적 의의를 설명하고 사회주의 초급 단계에서의 당의 기본강령을 제기했으며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를 공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기본경제제도라고 명확히 했으며 법에 의해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우리 나라의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세기를 뛰여넘는 발전의 웅위한 목표를 명확히 했다. 중국공산당 제15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고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1998년 3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새 국면을 개척하자>를 제목으로 보고를 하고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분투목표를 제기했으며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는 근본요구를 설명했다. 중국공산당 제16기 제1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다. 2003년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중국공산당 제13기 제4차 전원회의 후 강택민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건설의 실천을 지도하는 과정에 전당,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 인솔하여 당의 기본리론, 기본로선, 기본강령을 견지하고 사회주의란 무엇이고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하며 어떤 당을 건설하고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심화했으며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형성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리론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켰다.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은 맑스주의 기본원리를 견지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중국의 발전 변화가 당과 국가 사업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반영했으며 새로운 사상, 관점, 론단으로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을 계승하고 풍부히 하고 발전시켰다.
강택민은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발전의 길 문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반드시 발전을 당의 집권흥국의 제일 중요한 일로 삼고 끊임없이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전당의 사업의 대국은 기회를 잡고 개혁을 심화하며 개방을 확대하고 발전을 촉진하며 안정을 유지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반드시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하는 방침이다. 당의 기본로선의 모든 내용을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경제건설이라는 이 중심과 네가지 기본원칙, 개혁개방이라는 이 두가지 기본점을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위대한 실천에 통일시키며 현대화 건설의 모든 과정에 관통시켜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발전은 진리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시종일관 견지해야 할 전략사상이다. 부유해야만 떳떳할 수 있고 락후하면 당하게 된다. 우리의 경제실력, 국방실력, 민족응집력이 끊임없이 증강된다면 ‘어떠한 풍랑에도 끄떡없이 낚시배를 탈 수 있다.’ 그는 당과 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형세를 깊이 분석하고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제시했다. 전반 국면을 살펴볼 때 21세기 첫 20년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반드시 억세게 틀어쥐여야 할 뿐만 아니라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기회기로서 반드시 주동적 정신과 우환의식이 있어야 하며 기회를 틀어쥐여야 하지 상실해서는 안되며 개척진취해야 하지 낡은 것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전국인민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 건설에 전념하고 한마음한뜻으로 발전을 도모하며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의 조화로운 발전을 끊임없이 촉진해야 한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응당 우리 나라 경제, 정치, 문화가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이여야 하며 우리 나라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이 전면적으로 건설되는 과정이여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우리가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제반 사업과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인민의 현실적인 물질문화생활 수요에 착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민들의 자질을 제고하는 데도 착안해야 한다. 다시 말한다면 사람들의 전면적인 발전을 힘써 촉진해야 한다. 사람들의 전면 발전을 추진하는 것과 경제, 정치, 문화 발전을 추진하고 인민의 물질문화 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상호 전제와 토대로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개혁, 발전, 안정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처리해야 한다. 개혁은 동력이고 발전은 목표이며 안정은 전제이다. 개혁의 강도, 발전의 속도와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통일시키고 인민들의 생활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을 개혁, 발전, 안정의 관계를 처리하는 중요한 결합점으로 삼아 사회가 안정한 가운데서 개혁과 발전을 추진하고 개혁과 발전을 통해 사회의 안정을 촉진해야 한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21세기 첫 20년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단계이고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발전 단계와 발전 전략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키는 단계로서 우리 나라 국정과 인민들의 념원에 부합되고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충분하게 모든 적극적인 요소를 동원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데 리롭다. 20세기 90년대에 강택민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고 세번째 단계의 전략목표를 실현하는 것과 관련해 전망성 있는 전략적 사고를 진행했다. 그는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세번째 단계 전략목표를 실현하는 청사진을 초보적으로 그렸다. 그는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다음 세기를 전망할 때 우리의 목표는, 첫번째 10년에는 국민생산 총액을 2000년의 2배로 늘여 인민들의 초요생활이 더욱 여유 있게 하고 비교적 완벽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 10년 동안의 노력을 거쳐 당창건 100돐이 될 때에는 국민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제반 제도가 더욱 완벽해지게 하는 것이다. 21세기 중엽 건국 100돐이 될 때에는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부강하고 민주적이고 문명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제15기 제5차 전원회의는 새 세기로부터 우리 나라는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서둘러 추진하는 새로운 발전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일층 제기했다.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분투목표를 깊이있게 론술하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본세기 첫 20년 동안에 력량을 집중해 10여억 인구에게 혜택을 주는 더욱 높은 수준의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함으로써 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민주가 더욱 건전하며 과학교육이 더욱 진보하고 문화가 더욱 번영하며 사회가 더욱 조화롭고 인민의 생활이 더욱 부유해지게 해야 한다. 이는 현대화 건설 세번째 전략목표를 실현함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앞과 뒤를 이어주는 발전단계이자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보완하고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관건적인 단계이기도 하다.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근본적 임무에 대해서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반드시 력량을 집중해 사회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첫번째 자리에 놓고 선진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끊임없이 촉진해야 한다. 이것은 당이 시종일관 시대의 선두에 서있고 선진성을 유지하는 근본적 구현이자 근본적 요구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람은 생산력 가운데서 가장 결정성이 있는 력량이다. 지식인을 포함한 로동자계급, 광범한 농민은 언제나 우리 나라 선진적인 생산력의 발전과 사회의 전면적 진보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력량이다. 사회변혁 과정에서 나타난 민영과학기술기업의 창업자와 기술자, 외자기업에 초빙된 관리기술 일군, 자영업자, 사기업 업주, 중개조직 종사자, 자유직업자 등 사회계층은 모두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업의 건설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인재자원은 제1자원이다. 각급 당위와 정부는 당과 국가 사업의 장원한 발전과 인재의 총체적 수요에 립각해 인재를 양성하고 인재를 흡인하며 인재를 잘 사용하는 세가지 고리를 억세게 틀어쥐고 인재전략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는 사회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는 가운데서의 과학기술의 중요한 역할을 고도로 중시하면서 한가지 도리를 명기할 것을 강조했다. 그것인즉 바로 강대한 과학기술 실력이 없으면 사회주의 현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혁신과 과학기술 혁신을 힘껏 추진하고 국가지식혁신 체계를 건설하며 자주적 혁신능력을 증강해 기술발전의 비약을 실현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회주의의 생산관계와 상부구조를 끊임없이 보완하고 생산력 해방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더욱 광활한 경로를 열어야 한다.
강택민은 새로운 실천과 결부해 우리 나라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리론적 사고를 더한층 심화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쏘련의 해체, 동유럽 격변의 교훈을 참답게 총화하고 우리에게 발생한 ‘문화대혁명’이라는 심각히 굴곡적인 교훈, 그 원인을 깊이 분석해보면 두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반드시 사회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둘째, 반드시 사회주의 개혁을 진행해야 하며 본국 실제에 부합되는 사회주의 발전의 길을 탐색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혁신은 한개 민족이 진보하는 령혼이며 한개 국가가 흥성발전하는 무궁무진한 동력으로서 반드시 여러 면의 개혁을 드팀없이 추진해야 하고 개혁은 실제로부터 출발하고 전체적으로 추진하며 중점적으로 돌파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하며 제도 건설과 혁신을 중요시해야 한다. 20세기 90년대, 그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이 리론혁신을 견지했으며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는 거대한 용기를 갖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개혁 목표와 기본기틀을 확립했으며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기본경제제도와 로동에 의한 분배를 주체로 했으며 여러가지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분배제도를 확립해 전면 개혁개방의 새 국면을 개척했다. 1992년 6월, 그는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체제에 대해 반드시 근본적인 개혁을 진행하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현대화를 실현할 수 없다고 제시했다. 등소평의 남방 연설 정신에 근거해 그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이 제기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제시했는데 이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 소집을 위해 중요한 사상리론 준비를 마련했고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식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건립을 중국 경제체제 개혁의 목표로 정했다. 중국공산당 제14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는 약간의 문제에 관한 결정>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는 총체적 계획을 제정했다. 20세기말에 이르러 우리 나라는 이미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기본기틀을 초보적으로 세웠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가 함께 발전하게 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하나의 기본경제제도이고 공유제 실현 형식이 다양화할 수 있으며 반드시 다양화해야 하고 주식제는 현대기업의 일종 자본조직 형식으로서 자본주의도 사용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도 사용할 수 있다. 반드시 공유제 경제를 드팀없이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야 하며 반드시 비공유제 경제의 발전을 드팀없이 격려, 지도, 인도해야 한다. 그는 국유자산 관리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경제체제 개혁을 심화하는 중대한 임무라며 국가 소유를 견지하는 전제에서 중앙과 지방의 두개 적극성을 충분히 발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유기업은 우리 나라 국민경제의 기둥이고 국유기업 개혁은 우리 나라 경제체제 개혁의 중심고리로서 전반 국유경제를 잘 발전시키는 데 착안하여 큰 것을 잘 틀어쥐고 작은 것을 살리며 국유기업에 대해 전략적 개조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현대기업 제도를 세우는 것은 국유기업 개혁의 방향으로서 ‘재산권이 분명하고 권리와 책임이 명확하며 정부와 기업이 분리되고 관리가 과학적이여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국유 대중형 기업에 대해 규범적인 회사제 개혁을 진행하여 기업이 시장에 적응하는 법인실체와 경제주체로 되게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시장기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시키고 거시적 조절을 강화하는 것은 모두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는 기본요구로서 거시적 조절 체계를 다그쳐 건전히 하고 보완하며 금융, 재정, 계획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거시적 조절 수단과 조률 기제를 보완하며 적당하게 긴축된 재정정책과 화페정책을 실시하고 조절강도를 장악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분배관계를 정돈하는 것은 광범한 군중의 절실한 리익과 적극성 발휘에 관계되기에 로동에 의한 분배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분배제도를 보완해야 하며 능률 우선과 공평을 겸하여 돌보는 것을 견지하고 경제발전 수준과 서로 적응하는 사회보장 체계를 건립, 건전히 하고 도시종업원 기본양로보험 제도와 기본의료보험 제도를 보완하고 실업보험 제도와 도시주민 최저생활보장 제도를 건전히 하며 농촌 양로, 의료 보험과 최저생활보장 제도를 탐색해 건립해야 한다.
20세기 90년대에 들어서 강택민은 경제 세계화가 부단히 가속화되는 추세를 단단히 파악하고 중국이 발전하고 진보하고 부강해지려면 반드시 대외개방을 해야 하고 세계 각국과의 경제, 과학기술, 문화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모든 선진적인 것을 흡수하고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관련 정책을 더한층 보완하고 대외개방을 계속 드팀없이 확대해야 하며 대외개방의 형식과 내용을 부단히 풍부히 하고 대외개방의 질과 수준을 부단히 제고하며 전방위적, 다차원적, 넓은 분야의 대외개방 구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세계무역조직 가입은 당이 우리 나라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의 수요로부터 출발해 내린 중대한 전략적 결책으로서 우리 나라 대외개방이 하나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강택민은 중국이 세계무역조직에 가입하는 원칙에 대해 천명했다. 첫째, 중국이 세계무역조직 가입은 중국경제발전과 개혁개방의 수요인 동시에 세계무역조직도 중국을 소요하고 있다. 12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의 참여가 없으면 세계무역조직은 불완전하며 세계경제의 발전에도 불리하다. 둘째, 중국은 하나의 개발도상국으로서 사회생산력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기에 개발도상국의 조건으로 세계무역조직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셋째, 중국이 세계무역조직 가입은 그 권리와 의무가 반드시 균형돼야 하며 중국은 지나치게 높고 중국 감당 능력을 초과한 제시 조건을 접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지도원칙에 근거해 중국은 세계무역조직에 가입하는 담판 과정에서 시종 주동권을 장악했고 2001년 12월 정식으로 세계무역조직의 성원으로 되였다. 강택민은 외국상인의 직접투자를 더한층 흡인하고 외자리용 질과 수준을 높이며 상품과 봉사 무역을 더한층 확대하고 시장 다원화 전략을 실시하며 품질로 승부하는 것을 견지하고 경제특별구는 새로운 우세를 따내며 더 크게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는’ 전략을 실시하는 것은 대외개방 새 단계에서의 중대한 조치이고 ‘도입하는 것’과 ‘나아가는 것’은 대외개방의 두개 바퀴로서 반드시 동시에 회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중국의 발전과 진보는 세계 각국의 문명성과를 떠날 수 없으며 대외개방 과정에서 반드시 시종 국가주권과 경제, 사회 안전을 수호하는 데 주의를 돌리고 국제위험 충격을 방지하고 해소하는 데 주의를 돌리며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것과 자력갱생을 견지하는 것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고 립각점을 자신의 힘에 의거하는 토대 우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 경제건설과 관련해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우리는 발전도상국이다. 현대화를 실현하고 선진국과의 차이를 줄이려면 관건은 비교적 높은 속도, 비교적 높은 효익이 있는 국민경제 발전의 길로 나아가고 경제성장 방식이 조방형에서 집약형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하며 국민경제의 지속적이고 빠르며 건전한 발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속도와 효익의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려면 반드시 발전의 사로를 업그레이드하고 경제성장 방식의 조방형에서 집약형으로의 전환을 실현해야 한다. 경제운행의 질과 효익을 향상시키려면 관건은 구조 불합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경제구조에 대한 전략적 조정, 내수 확대는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의 장기적, 기본적인 발판이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신형 공업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보화로 공업화를 인솔하는 것을 견지하고 공업화로 정보화를 촉진해 과학기술 함량이 높고 경제효익이 좋으며 자원소모가 낮고 환경오염이 적으며 인력자원 우세가 충분히 발휘되는 신형 공업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과학기술 교육흥국의 전략과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농업, 농촌, 농민 문제는 시종 우리 당, 국가의 전반 국면과 관계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도시와 농촌 경제, 사회의 발전을 일괄적으로 추진하고 현대농업을 건설하며 농촌경제를 발전시키고 농민수입을 늘이는 것은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는 중대임무이다. 세기를 뛰여넘으면서 그는 전당, 전국인민을 향해 기회를 다잡고 서부대개발 전략을 실시할 것을 분명히 제기했다. 그는 또 경제를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목적은 전국인민의 생활 수준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고 취업은 민생의 근본으로 취업확대는 우리 나라 현재와 향후 오랜 시간 동안의 중대하면서도 간고한 임무라고 제기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 정치건설과 관련해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정치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는 중요목표이다. 사회주의 정치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 나라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발전의 필연적 요구이고 중국공산당이 인민을 령도하고 인민민주를 발전시키는 장기적 실천의 필연적 결론이며 중국공산당이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업의 규률성에 대한 인식을 일층 심화시켰다. 그는 다음과 강조했다.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발전시키는 가장 근본은 당의 령도, 인민이 나라의 주인, 의법치국의 유기적 통일을 견지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민주제도를 견지 및 보완하고 민주제도를 구전히 하며 민주형식을 풍부히 하고 공민의 질서적인 정치참여를 확대하며 인민이 법에 따라 민주선거, 민주결정, 민주관리, 민주감독을 실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광범위한 권리와 자유를 향수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해야 한다. 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협력과 정치협상 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며 가장 광범한 애국통일전선을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며 당의 민족정책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평등, 단결, 호조의 사회주의 민족관계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 여러 민족의 공동 번영, 진보를 촉진해야 한다. 당의 종교신앙 자유 정책을 전면적으로 관철해야 한다. 법에 따라 종교사무를 관리하고 종교와 사회주의사회의 상호적응을 적극 인도하며 독립, 자주, 자영의 원칙을 견지해 해외 세력이 종교를 리용해 침투하는 것을 견결히 막아야 한다. 당의 해외 교민 사무 관련 정책을 착실하게 관철해야 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기층 민주를 확대하는 것은 사회주의민주를 발전시키는 기초성 사업이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의법치국을 실행해야 한다.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법제건설을 강화해 의존할 법이 있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며 집법은 반드시 엄격해야 하고 불법은 반드시 추궁하는 것을 견지하는 것으로 국가의 각항 사업이 점차 법제화 궤도에 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정치체제 개혁은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자기 보완 및 발전이다. 우리 나라 국정에서 출발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 스스로의 실천경험을 총화하는 동시에 인류 정치문명의 유익한 성과를 참고하며 서방의 정치제도 모식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된다. 제도건설을 강화해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제도화, 규범화, 절차화를 실현해야 한다. 그는 또 사회안정 유지 사업을 착실하게 추진해 안정적이고 단결하는 사회정치 국면을 지켜야 한다고 제기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문화 건설과 관련해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문화는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결시키고 격려하는 중요한 력량이고 종합국력의 중요한 표지이다. 오늘날의 중국에서 선진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특색 사회주의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고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하는 것이다.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을 의식형태 령역의 지도적 지위에 놓는 것을 반드시 견지하고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으로 사회주의문화 건설을 인솔하며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방향과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을 견지하는 것으로 주선률을 고양하고 다양화를 제창해야 한다. 과학적인 리론으로 사람을 무장하고 정확한 여론으로 사람을 인도하며 숭고한 정신으로 사람을 교육하고 훌륭한 작품으로 사람을 격려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 선진문화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건전하고 유익한 문화를 지지하며 락후한 문화를 개조하는 데 공을 들이고 진부한 문화를 견결히 막아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민족정신은 한 민족이 생존하고 발전하는 정신적인 버팀목이다. 세계 범위내 다양한 사상, 문화의 상호 격돌 앞에서 반드시 민족정신 고양 및 육성을 문화건설의 지극히 중요한 임무로 내세워 국민교육의 전 과정, 정신문명 건설의 전 과정에 포함시켜 전체 인민이 시종 앙양되고 진취적인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회주의 법제건설, 의법치국, 사회주의 도덕건설, 의덕치국을 추호의 느슨함이 없이 강화해 법제건설과 도덕건설을 밀접하게 결합시키고 의법치국과 의덕치국을 밀접하게 결합시켜야 한다.
강택민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은 기간에 국방과 인민군대 건설에 대해 많은 중요사상을 제기해 강택민 국방 및 군대 건설 사상을 창립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공고한 국방을 건립하는 것은 우리 나라 현대화 건설의 전략적 임무이며 국가 안전통일을 수호하고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중요한 보장이다. 모택동 군사사상, 등소평 새시대 군대건설 사상을 지침으로 하여 정치적으로 합격되고 군사가 탄탄하며 작풍이 우수하고 규률이 엄명하며 보장이 유력한 총적 요구에 따라 승리할 수 있고 변질되지 않는 두가지 력사적 과제를 긴밀히 둘러싸고 확고부동하게 중국특색 정병의 길로 나아가고 인민군대의 혁명화, 현대화, 정규화 건설을 강화해야 한다. 시종 사상정치 건설을 우리 군대의 제반 건설의 첫자리에 놓고 인민군대의 성질, 본색, 작풍을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 그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절대적인 령도는 우리 군대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군혼으로서 당이 인민군대를 령도하는 근본 원칙과 제도를 확고부동하게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의 새로운 군사변혁의 도전을 맞이하고 중국특색 군사변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제기했다. 20세기 90년대에 중공중앙과 중앙군사위원회는 새로운 시기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군사전략 방침을 확립하고 전략지도에서 중대한 조정을 실행하여 군사투쟁준비의 기점을 일반 조건하에 국지전에 대처하던 데로부터 현대기술 특히는 첨단기술 조건하에 국지전에서 승리하는 데로 전환시켰다. 그 후 군사투쟁준비의 기점을 정보화 조건하에 국지전에서 승리하는 데로 전환시킬 것을 더한층 제기해 새로운 형세에서 우리 군대의 군사투쟁준비 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하고 우리 군대 건설의 주요모순을 틀어쥐였으며 우리 군대 건설과 개혁의 발전방향 문제를 정확히 해결했다. 그는 군대, 무장경찰부대와 정법기관은 일률로 상업활동에 종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의 조화로운 발전방침을 견지하고 경제발전의 토대에서 국방과 군대의 현대화를 추진하여 자국의 첨단기술 무기장비의 ‘비장의 카드’를 신속히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조국통일 대업을 완수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근본리익이며 대만동포, 향항, 오문 동포, 해외 교포를 포함한 전 중국인민의 공동한 념원이다. 그는 향항, 오문에 대한 중국 정부의 주권 행사 회복에 대한 일련의 준비사업을 지도했다. 1997년 7월 1일에 향항 회귀를 실현했고 1999년 12월 20일에 오문 회귀를 실현했다. 그는 선후하여 향항, 오문에 가 중국, 영국 정부, 중국, 뽀르뚜갈 정부가 거행한 향항, 오문 인수인계식에 참가했다. 향항과 오문이 조국으로 회귀하면서 ‘한 나라 두가지 제도’의 리론과 실천을 풍부히 했다. 향항, 오문이 조국으로 회귀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한 나라 두가지 제도’ 방침을 전면적이고 정확하게 관철해야 하고 엄격히 향항기본법, 오문기본법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며 향항, 오문 두 특별행정구 행정장관과 정부의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향항, 오문 각계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단결시켜 향항과 오문의 번영, 안정, 발전을 공동으로 수호하고 촉진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확고한 지지하에 두 특별행정구 정부는 아시아금융위기 및 내외경제환경 변화가 가져다준 충격과 영향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각계 인사들을 단결시켜 일련의 사회와 경제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했으며 사회안정과 경제발전을 유지시켰다. 강택민은 대만문제를 해결하는 전반 국면을 파악하여 량안 쌍방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구현한 ‘92공동인식’에 합의하도록 추진하고 량안의 협상담판을 추진했다. 1995년 1월, 그는 “조국통일대업의 완성을 촉진하기 위해 계속 분투해야 한다”는 중요연설을 발표하였고 현단계에서 량안 관계를 발전시키고 조국의 평화통일 진척을 추진하는 8항 주장을 제기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토대와 전제이며 우리가 무력사용을 포기하는 것을 약속하지 않는 것은 결코 대만동포들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세력이 중국의 통일에 간섭하고 ‘대만독립’을 시도하려는 데 겨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설은 조국통일 대업을 완수하려는 확고한 결심을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대만동포들의 념원과 대만의 실제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국내외의 고도의 관심과 적극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문공무비(文攻武备)’ 총적 방략을 제기했고 반분렬, 반 ‘대만독립’ 중대투쟁을 지도했다. 그는 정중하게 제시했다. 국가가 통일되고 민족이 부흥하려면 대만문제는 무기한으로 지연되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체 중화의 아들딸들의 공동의 노력으로 조국이 반드시 하루빨리 완전한 통일을 실현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국제정세의 변화무쌍한 기복에 직면하여 강택민은 세계정세 발전의 총적 추세를 깊이있게 통찰해 일련의 외교 및 국제 전략사상을 제기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외교 리론과 실천을 풍부히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평화와 발전은 여전히 현시대의 주제이다. 세계 다극화와 경제 글로벌화는 굴곡 속에서 발전하여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기회와 유리한 조건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세계대전은 예견할 수 있는 시기내에는 발생하지 않는다. 비교적 긴 시기의 평화로운 국제환경과 량호한 주변환경을 쟁취하는 것은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국제 정치, 경제의 낡은 질서는 근본적으로 개변되지 않았다. 평화와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한 요소가 증가하고 전통적인 안보 위협과 비전통적인 안보 위협의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패권주의와 강권정치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남북 격차가 더욱 확대되며 세계는 아직 불안하고 인류는 많은 준엄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는 평화와 발전은 여전히 현시대의 주제이며 국제 풍운이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시종일관 독립자주의 평화외교 정책을 실행해야 하고 중국 외교정책의 취지는 세계평화를 수호하고 공동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발전도상국가와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대외정책의 기본 발판으로 삼고 선진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선린우호를 계속 강화하고 이웃과 친선적으로 지내고 이웃을 동반자로 하며 지역협력을 강화하고 주변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제3세계와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고 서로 도움과 지지를 강화할 것을 제기했다. 그는 세계가 다극화로 나아가도록 적극 추진하고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추진하며 세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명교류와 상호참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중국은 계속하여 다자외교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유엔과 기타 국제 및 지역성 기구에서 역할을 발휘하고 발전도상국가가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다. 그는 시대의 수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안전관을 건립해야 하며 그 핵심은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협력이라고 제기했다. 그가 설립을 추진한 상해협력기구는 중국이 설립을 추진하는 데 참여하고 중국 도시의 이름을 딴 첫 지역성 협력기구로서 그가 창도한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협상, 다양문명을 존중하고 공동발전을 도모하는 ‘상해정신’은 당대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택민은 당의 자체건설에 깊은 중시를 돌렸다. 그는 전당 동지들이 새로운 실제로부터 출발하고 개혁정신으로 당건설이 직면한 중대한 리론과 현실문제를 연구, 해결해 당이 시종 선진성과 순결성을 유지하고 창조력, 응집력, 전투력이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당을 다스려야 하고 당을 다스리려면 필연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는 또 지도수준과 집권수준 향상, 부패 방지 및 위험 대처 능력 강화라는 두가지 력사성 과제를 완전하게 제기하고 전당에서 착실히 연구하고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와 같은 다민족 개발도상 대국은 전체 인민들의 의지와 힘을 모아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다그쳐 추진하며 반드시 한치의 느슨함도 없이 당의 령도를 강화, 개선하고 당건설이라는 위대한 공정을 전면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은 시종 중국 로동자계급의 선봉대이고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선봉대이며 시종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업의 지도핵심이고 시종 중국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하며 중국 선진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고 가장 광범한 중국인민의 근본리익을 대표한다는 것을 담보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반드시 당의 사상리론 건설을 더욱 두드러진 위치에 놓아야 한다. 당의 집권능력 건설을 강화하고 당의 지도수준과 집권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민주집중제를 유지, 보완하고 당의 활력과 단결, 통일을 강화해야 한다. 소양이 높은 지도간부대오를 건설하고 씩씩하고 분발하는 지도층을 형성해야 하며 지도간부들은 학습, 정치, 옳바른 기풍을 중시해야 한다. 기층 당건설 사업을 잘해 당의 계급 토대를 강화하고 당의 군중 토대를 넓혀야 한다. 당기풍 건설을 강화하고 부패척결 투쟁을 깊이있게 전개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당기풍 건설을 추진함에 있어서 핵심은 당과 인민대중의 혈육적 련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우리 당의 가장 큰 정치적 우세는 대중들과 밀접히 련계하는 것이며 당이 집권한 후 가장 큰 위험은 대중을 리탈하는 것이다. 부패를 단호히 반대하고 방지하는 것은 전당의 중대한 정치임무로서 표면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을 함께 다스리고 종합적으로 다스리는 방침을 견지하고 근본을 다스리는 강도를 점차적으로 높여야 한다. 동시에 교육을 강화하고 민주를 발전시키며 법률제도를 보완하고 감독을 강화하며 체제를 혁신하는 것을 통해 부패척결 정책을 각종 중요한 정책, 조치 속에 포함시켜 부패문제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전당 동지들이 시종일관 공산당원의 활기찬 기운과 드높은 기세, 옳바른 기풍을 유지하고 영원히 인민대중과 한마음이 된다면 우리 당의 집권 토대는 반석처럼 견고할 것이다.
강택민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중국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모든 사업의 출발점과 립각점은 가장 광범한 인민의 근본리익을 끊임없이 잘 실현하고 잘 유지하며 잘 발전시키는 것이다. 당의 방침과 정책을 제정, 관철하는 기본 착안점은 가장 광범한 인민들의 근본리익을 대표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방면의 대중들의 리익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함께 고려하여 전체 인민들이 공동부유의 방향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반드시 시종일관 당의 군중로선을 견지하고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하고 모든 것은 인민에 의거하며 군중 속에서 나오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견지하며 인민의 창조정신을 존중하고 인민대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민대중들의 념원을 반영하고 인민대중들의 지혜와 힘을 결집해 제반 사업을 발전시킴과 아울러 전반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과정에서 로동자, 농민, 지식분자 및 기타 대중들이 공동으로 경제, 사회의 발전 성과를 향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는 각급 지도간부들이 성심성의껏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지침을 명기하고 강한 공복의식을 수립하며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깊이 품고 인민을 위하는 책임을 준수하며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 방안을 잘 도모하고 인민을 리롭게 하는 일을 많이 하며 항상 인민대중의 안위를 마음에 두고 대중들의 질고에 관심을 가지며 대중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택민이 당과 국가의 주요 령도 직무를 맡았을 당시 우리 나라는 국내외 형세가 매우 복잡하고 세계 사회주의에 심각한 굴곡이 나타난 준엄한 시험에 직면해있었다. 그는 당의 중앙령도집체를 이끌고 전당과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에 긴밀히 의거해 우리 나라 주권과 안전에 관계되는 일련의 국제적 돌발사건에 침착하게 대처하고 정치, 경제 분야와 자연계에 나타난 어려움과 위험을 이겨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의 충격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1988년 홍수방지 긴급구조 투쟁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항선이 시종 옳바른 방향을 향해 파도를 헤가르며 전진할 수 있도록 담보했다.  
2004년 9월, 중국공산당 제16기 제4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이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직무를 사직하는 것을 동의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 3월, 10기 전국인대 3차 회의 제2차 전체회의에서 강택민이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무를 사직할 데 관한 청구를 접수할 데 관한 결정을 통과했다. 령도직에서 물러난 후 강택민은 당중앙의 사업을 견결히 옹호하고 지지하였으며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관심하고 당풍, 렴정 건설과 부패척결 투쟁을 확고히 지지했다.
강택민은 몸소《강택민문선》제1권, 제2권, 제3권의 편집과 심의를 주관했다.《강택민문선》은 주로 강택민이 20세기 80년대말부터 21세기초까지의 대표적이고 독창적인 중요한 저작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우리들이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더욱 깊이있게 학습, 터득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과 당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꾸준히 추진하는 데 중요한 교과서를 제공하였다.
강택민이 창립한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은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의 계승과 발전이고 당대의 세계와 중국의 발전변화가 당과 국가 사업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였으며 당건설을 강화, 개진하고 우리 나라 사회주의 자기 보완과 발전을 추진하는 강대한 리론무기이고 중국공산당 집단 지혜의 결정체이며 당이 반드시 장기간 견지해야 할 지도사상이고 당과 인민의 귀중한 정신적 재부이다.
오늘, 우리는 력사상 그 어느 때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목표에 더욱 근접했고 더욱 큰 신심과 능력이 있다. 새로운 로정에서 전당과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은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강력한 지도 아래 더욱 긴밀히 단결하여 중국특색 사회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두가지 확립’의 결정적인 의의를 깊이 터득하고 ‘네가지 의식’을 증강하고 ‘네가지 자신감’을 확고히 하며 ‘두가지 수호’를 실천하는 동시에 자신자강하고 수정혁신하며 분발진취하고 용왕매진하며 만민이 한마음이 되여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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