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4-03-21 16:40:18
성장, 익어가며 자란다는 뜻이다.
성장이야기는 젊은이들의 전용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여든을 넘긴 지금도 써나갈 성장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나의 성장길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분투의 길이였다.
나의 성장에 긍정적 에너지를 준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1951년 항미원조 전선 포화 속에서 기관사로 내달리며 임무를 잘 수행해 큰 공을 세우고 지원군 대표대회에도 참가한 분이다. “착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가 아버지의 어록이였다. 그런 아버지의 가훈으로 우리 다섯남매는 어디에 가든지 착한 아이들로 사랑을 받았다.
부모님이 이 몸을 낳아주어 이 세상을 구경하게 되였고 당의 은덕 속에서 행복하게 성장한 나는 결혼해서는 한결같이 살펴주는 부인의 그 눈길 속에서 ‘커’가며 아직도 ‘착한 사람’이 되는 한길에서 달리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록도라고 하는 자그마한 철도마을에서 보냈다. 당시 ‘녕안현제16완전소학교’에는 전교학생이 겨우 40명이였는데 한개 소년선봉대를 세울 수 없어 기타 학교의 한개 중대로 편성되였다. 입대하는 날 학교 소선대원들이 와서 붉은넥타이를 매주었고 담임선생님이 나의 팔에 소대장표식을 달아주면서 “일생에 3가지 영광이 있어요. 입대하고 입단하고 입당하는 것이예요.”라고 하던 말씀이 평생 잊어지지 않는다. 그 때는 그 참뜻을 몰랐는데 커가며 차츰 가슴에 와닿았다.
고중시절 나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는데 바로 1960년대 ‘뢰봉 따라배우기’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서 나도 ‘뢰봉식 공청단원’이라는 표창까지 받았다.
1965년, 조직에서는 재정경제학교 교문을 나서 돈화현에 배치받은 나를 농촌사회주의교양공작대에 가입시켰다. 오곡도 가릴 줄 모르는 이 책벌레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는 기회를 준 것이였다.
농민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며 왕청현 계관공사의 두메산골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였다. 젊은 나이에 열정만은 넘쳤고  두려움없이 뛰여다녔다. 한번은 전화가 통하지 않아 엄동설한의 한밤중에 15리 산길을 혼자 뛰여가 린근 공작대에 특급통지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도 있었는데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나서서 원만히 임무를 수행했다. 언제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나의 사업태도는 지도부의 긍정을 받았고 단련과 고험을 거쳐 나는 중국공산당 예비당원으로 성장했다.
그 때 21살이였던 나는 진정 ‘착한 사람’이 되여가기 시작했다. 입당하던 날 나는 일기에 소년선봉대에 가입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세가지 영광’을 다시한번 적어보았다.
사업에 참가한 후 나는 무슨 일이든 주저없이 조직의 지시 대로 움직였다. 아버지의 ‘훈계’를 명심하고 ‘계봉’이라는 별명의 내포도 늘 되새기며 당을 따라 나아갔다.
그후 조직에서는 금융 전공을 배웠던 나를 인민은행의 기층책임자로 발탁시켜주었다. 나는 금융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기업소 관리, 경제발전 동태 등을 배웠고 사회현상조사보고, 론문 등을 부지런히 써내며 전국 론문교류회에 참가하고 련속 3차례 ‘주급 금융 붉은기 기수’를 따내기도 했다. 개혁개방의 물결 속에서 경제사로 활약하면서 나는 정년을 맞았다.
퇴직 후 사회인으로 탈바꿈한 나는 남은 정열로 사회공익활동에 참가해 뢰봉정신을 실천에 옮겼다. 2009년, 나는 부부동반으로 연길시의 첫 뢰봉반인 북산가두 로인뢰봉반에 가입했다. 제일 나젊은 로인뢰봉으로 되여 ‘맹인반장’을 친인으로 모시고 뢰봉반 선배님들에게서 인생을 배우며 사랑을 실천했고 베풀기와 기여로 매일의 일기를 적었다. 베푸는 삶 속에서 성장해나가니 풍부한 영양소가 자양분이 되면서 참된 나이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2019년부터 나는 로인뢰봉반 반장의 계주봉을 이어받고 뭇로인들과 함께 사랑을 전하며 기여를 비기는 활동들로 나날을 보내왔다. 석양을 더 멋지게 장식하려는 로인들마다 사랑의 손길 보내기를 그토록 긍정하면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앞장설 때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더 잘 봉사하고 그들과 함께 더욱 착한 사람이 되여 당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다지군 한다.
인생의 성장은 험악한 고생문도 톺아야 하지만 그 고비들을 이겨내면 탄탄대로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당을 따른 나의 안해 김봉선은 퇴직 후 사회구역 주임 겸 당총지서기로 8년간, 이어서 위원으로 로년사업을 4년간 맡아왔다. 배울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이 세상에서 그의 사업예술, 애착심과 드높은 책임감은 역시 나의 성장에 소중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당의 사업에 충실하며 50여성상 동반자인 그는 나의 성장 증인이며 역시 나의 훌륭한 선생이며 변함없이 손잡고 성장해가는 길동무이다.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을 맞으며 ‘당과 함께 50년’ 기념메달을 받던 날 나는 무한한 영광을 느꼈고 안해도 너무나 기뻐하면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부부동반으로 노래교실과 주로간부대학 성악반에 다닌 지도 어언 15년이 된다. 나의 성장 한길에 부모님은 사랑을 아끼지 않았고 당조직은 줄곧 양성을 잊지 않았으며 안해는 온갖 심혈을 다 바쳐 나의 건강을 살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착한 사람’이 되여가는 밑거름이다.
젊음으로 살고 노래로 살며 책과 함께 살아가면서 더욱 ‘착한 사람’으로 성장하련다.
쌓여지는 나이가 바로 내 성장의 그라프이다. 아직도 더 성장해야 하고 더 색갈 짙은 성장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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