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련군 로전사들의 구술
날짜 2020-01-10 15:57:34

부대 재편성

황전군: 나무로 간소한 무대를 설치하고 대회를 열었습니다. 양정우가 무대에 올라가 우리에게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일본침략자를 중국에서 쫓아내야만 우리 모두 해방될 수 있다고 하면서 견결하고 영용하게 항일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양정우는 우리 부대를 동북항일련합군으로 개편한다는 소식을 선포했습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모두 홍군이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1936년이였습니다.
팽시로: 1936년에 부대의 발전은 상당히 빨랐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졌던 무장력량들을 우리 신변으로 흡인하여 통일적으로 항일련합군 편제에 편성시켰습니다.

의복
황전군: 그 시절 우리는 적을 소멸하고 나면 적들의 옷을 벗겨서 입군 하였습니다. 그러다 나니 별의별 군복을 입은 전사들이 다 있었습니다. 겨울철에 일부 전사들은 솜바지 8벌을 껴입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추웠으면 솜바지 8벌이나 입어야 했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껴입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밀림 속에서 숙영할 때 얼마나 춥던지… 가운데 모닥불을 지펴놓고 빙 둘러앉아 불을 쪼이면서 몸을 녹이는데 어느새 솜바지가 불에 괄아서 행군을 할 때 나무가지에 살짝 긁히기만 하면 죽죽 찢어지군 했습니다.

식량
황전군: 굶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한때만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꿈이였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견뎌내기 참 힘들었습니다. 만구부락을 치는 그날 저녁, 련속 7일간 굶었으니 다리를 옮겨디딜 맥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련속 7일간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게 무슨 감각이겠는가를. 전사들이 집단부락으로 들어가 등잔을 밝힌 백성들의 집으로 찾아들어갔습니다. 나도 허기진 배를 달래며 겨우 찾아들어갔더니 우리 전사들이 뭘하고 있었겠습니까? 돼지죽을 먹고 있었습니다!
신련옥: 뭐나 다 먹었습니다. 야채도 채집하고 포도넝쿨 잎도 뜯어다 먹고… 버섯을 먹고 중독된 전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중이 심은 량식은 절대 다치지 않았습니다.
리민: 배고프면 나무껍질, 풀뿌리를 먹고 목이 마르면 눈을 한웅큼 먹군 했습니다.
조명산: 산골짜기에 뭐 먹을 게 있었겠습니까? 먹을 수 있는 풀은 다 뜯어먹었습니다. 큰고랭이풀이 달콤한 맛이 있어서 전사들이 먹기 좋아했습니다. 어떤 풀은 둬입 먹어보면 너무 쓰거워 그냥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2월이면 두텁게 덮인 눈을 파낸 후 총창으로 나무뿌리를 뚜져서 먹군 했습니다.

숙박
팽시로: 1937년 이전에는 그나마 형편이 괜찮았습니다. 일본놈들이 유격대작전에 경험이 결핍했기에 우리는 농촌에 발을 붙이고 심산 속에 밀영도 해놓고 식량이나 이불 등을 저장해놓기도 했습니다. 1938년 이후에는 형편이 심각해졌습니다. 원래의 밀영에 지어놓은 귀틀집마저 일본놈들이 깡그리 태워버리는 바람에 빙설이 뒤덮인 땅우에서 그대로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에는 모닥불을 지펴 추위를 막아야 했는데 리조린이 말하듯이 “앞가슴이 델 지경으로 불을 쪼여도 뒤잔등은 찬바람에 얼어터지는 형편”이였습니다.
황전군: 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구들이였습니다. 눈을 다져 한켠에 바람막이벽을 만든 후 가운데 큰 모닥불을 지펴놓고 맨땅에 누워 자야 했습니다. 눕기만 하면 얼마나 춥던지. 추워서 깨나면 다시 불을 쪼이는데 앞이 뜨거울 정도로 다 쪼여도 뒤잔등은 얼어터질 정도였습니다. 돌아서서 뒤를 쪼이고 나면 앞이 또 얼어들군 했습니다.

행군
황전군: 겨울철 눈길에서 적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전사들은 모두 앞 전사의 발자국을 따라 행군했습니다. 마지막에 선 전사들이 발자국을 눈으로 메우고 나무가지랑 꽂아서 위장을 했는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면 전혀 가려보기 힘들었습니다.
한밤중에도 부단히 행군해야 했습니다. 이동하지 않으면 적들에게 포위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위되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부단히 행군해야 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걸으면서 쪽잠을 자는 전사들도 있었습니다.
조명산: 나는 기관총을 메고 행군해야 했습니다. 서너개 산등성이를 지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피까지 토했습니다. 토한 피가 옷 어데나 다 묻었습니다. 가다가 토하고 가다가 또 토하고 점점 대오에서 떨어졌습니다.

무기탄약
팽시로: 우리에게는 정규적인 무기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무기는 기본상 농촌이나 민간에서 수집해온 총들이였는데 별의별 무기가 다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일 좋은 게 그래도 일본의 38형 보총이였습니다. 가끔 전투에서 38형 보총을 로획할 때도 있었는데 탄약보장이 안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때는 한사람이 몸에 20~30발 탄알을 지니였다면 대단한 일이였습니다. 전투할 때도 감히 탄약을 마음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마음대로 총을 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였습니다.
황전군: 탄알 일곱발을 초과하면 비판을 받군 했습니다. 어느 한번, 우리 사장이 나에게 탄알 50발을 주었습니다. 50발, 나는 너무 감동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장이 나 같은 전사에게 이런 관심을 주는 게 너무 감동되였습니다. 이 탄알은 내 목숨과 같았습니다.
 
규률
황전군: 우리 항일련군은 로백성을 보호해야 하고 로백성을 애호해야 합니다. 로백성의 물건을 빼앗지도, 함부로 가져가지도 않았습니다.
한광: 우리 항일련군은 백성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부대 주둔 위치도 일반적으로 마을 외각에 정했습니다. 백성들의 주택 주변에 마른 풀을 펴놓고 전사들이 그 우에서 자군 했습니다.

문화선전
황전군: (노래)“우리는 동북항일련합군, 련합군의 제1로군을 창조했다네. 탕탕 돌격함진의 총소리, 혁명승리의 철증이라네. 정확한 혁명신조 반드시 준수하여 장병 모두 대우는 평등하다네. 철 같은 규률 반드시 복종하여 무적의 무쇠군대 련마한다네. 돌격하라, 우리의 제1로군, 돌격하라 우리의 제1로군!” 이 <항일련군 제1로군 군가>는 양정우가 쓴 겁니다. 노래를 써서 우리더러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조명산: (노래)“만주의 병사형제들, 어느새 립춘이 오나니 어서들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 함께 적을 치자. 일본은 원쑤요, 만주를 차지하고 중국사람 죽이며 압박착취 다하니 놈들의 정권 빼앗자. 고생 많은 형제들, 일본놈들 너무 악독하니 강탈살인간음 도처에서 중국사람 업신여기네. 망국의 원쑤 바다보다 깊나니, 어서 꿈속에서 정신 차리소.” 이것은 <만주병사 권고가>의 한단락입니다. 만주병사들이 듣고 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주병사들 결심하나니 항일하는 사람은 모두 한가족, 어서 오세요, 총을 돌려 일본놈들을 총살합시다!” 그리고는 우리 쪽으로 건너왔습니다.

신념
리민: 그때는 생각도 간단했습니다. ‘중국홍군이 이미 열하까지 왔다.’, ‘인차 심양까지 온다.’ ‘래일이면 우리도 해방할 것이다.’ 번마다 래일, 래일이였습니다. 그렇게 꼬박 14년 동안 싸웠습니다. 늘 래일이면 해방되리라 믿었습니다. 언제나 희망이 있었기에 전투를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너무 멀면 안됩니다. 그때도 반변하고 투항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뭐라는지 압니까? “혁명이 언젠가 승리하겠지만 우리와 너무 멀다.” 신념을 잃었던 것입니다. 승리가 보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팽시로: 수많은 원 삼림대 장병들이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부대는 공산당의 부대와 확실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무슨 일본을 친다고 그러는가 하면서 의문을 가지군 했습니다.

승리
리민: 1940년에 양정우 장군이 희생하고 1942년에 조상지 장군이 희생했습니다. ‘남양북조’ 모두 희생하였으나 주보중, 리조림 등 장령의 지도하에 우리는 계속 전투를 견지하였습니다. 일부 부대는 쏘련에 가 정비훈련을 하면서 88려, 교도려를 설립하였습니다.
팽시로: 쏘련군이 중국 동북 일본침략군을 진공할 때 우리 교도려도 모든 전역의 배치에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는 소부대를 적후에 파견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쏘련군을 위해 정찰, 인솔과 번역 등 사업을 하였습니다. 전투가 상당히 순리로왔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순리로왔습니다. 전투가 시작된 지 7일 만에 일본이 투항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기대
리민: 우리 동북항일련합군 이 한단락 력사에 대한 선전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 특히는 대학생들이 이 력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뭐라는지 들어보았습니까? “만약 우리 동북에서 일본을 쫓아내지 않으면 우리도 향항이나 오문, 혹은 일본처럼 언녕 잘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 슬픈 일입니다. 우리 젊은 대학생들도 이 력사를 모른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리직한 후 항일련군정신을 선전하는 팀을 조직하였습니다. 우리 전국 인민이 동북군중들이 진행한 14년만의 간고한 항일사적을 잊지 말게 하기 위하여, 그 14년간 동북 3,000만 동포들이 지내온 망국노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잊지 말게 하기 위하여 많은 선전을 했습니다.  
  편역: 리혜숙

관련 뉴스

主管:中共延边州委组织部 主办:中共延边州委组织部
出版: 中共延边州委支部生活杂志社
地址:吉林省延吉市天池路4258号 
吉ICP备:17002320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