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9-11-26 16:25:18

요즘 나와 딸애는 날마다 TV로 전쟁중이다. ‘양말 신다’를 ‘양말 끼다’로, ‘웃다’를 ‘웃으다’로 이상한 외계어를 하는 딸애 때문에 고민이던 나는 우리 말을 더 우리 말답게 시키기 위해 중국TV보다는 한국의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이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TV가 콘텐츠가 더 풍부한 건지 아니면 중국어가 더 편해서인지 딸애는 한국TV를 썩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천국인 ‘아이치이(爱奇艺)’에 완전 눈이 돌아가있다. 그래서 한국 걸 보라느니, 중국 걸 보겠다느니 하는 전쟁을 심심찮게 하는 우리 둘이다. 웃지도 울지도 아이의 선택에 저도 몰래 내 어린 시절이 비교가 되며 떠오른다.
HOT와 SES, 핑클과 젝스키스의 음악을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낸 어린 나에게 한국은 무한한 동경의 나라였다. 서른일곱 어른이 된 지금도 한국,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화려한 조명과 360도 회전 카메라 앞에서 현란한 댄스를 선보이던 음악캠프 그리고 잘생기고 화장 잘하고 옷 잘 입은 배우들로 화면이 채워진 드라마와 예능프로이다. 그랬다. 난 한국연예인을 좋아하고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소위 빠순이였다. 그 시절 류행하던 드라마는 달달 외우다싶이 했고 드라마 대사 하나로도 꼬박 하루는 친구와 침방울을 튕길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시절의 중국드라마는 정말이지 억지로 코 꿰여 하는 공부만큼이나 고루하고 촌스럽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꼰대식 사고방식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어르신들과 꼭 닮아있었던 중국의 드라마는 자연히 신선한 피로 들끓던 어린 새싹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난 자연히 시대성과 류행성, 재미요소를 골고루 갖춘 한국드라마에 깊이 빠져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지만 청초함의 절정을 찍었던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가을동화》,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이 한마디로 내 혼을 쏙 빼놓았던《천국의 계단》의 권상우, 사랑에 미친 재벌집 도련님이 아버지의 골프채에 다리 끊어지도록 맞아가면서도 커플폰을 준비하고 싱글벙글하던《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 정말 그 시절에 미쳐있던 드라마는 밤을 새서라도 말할 만큼 끝이 없다.
중국TV를 죽 보고 자란 나지만 내 이십대까지의 기억 속에 중국드라마는 거의 없다. 그만큼 한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문화의 전성기였고 중국은 아직 온포문제를 해결하던 발전도상의 시기였으리라.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중국드라마에 눈을 뜨게 된 건 바야흐로 2009년,《달팽이집(蜗居)》이라는 드라마를 만나면서부터다. 작가 류류(六六)의 장편소설《달팽이집》을 드라마로 제작한 작품인데 4일 만에 시청률 력사의 신기록을 세웠다길래 단순한 궁금증을 안고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명품드라마가, 그간 내가 봤던 드라마와는 비교가 안되게 공감도가 높고 작품성이 좋고 연기가 좋았다. 그때가 마침 련애와 사랑과 결혼과 그리고 집 문제로 세상을 알아가던 스물일곱이였다. 또한 수많은 80후들이 방노(房奴)로 몰리며 삶에 고민을 하던 적절한 시기에 탄생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집과 사랑과 배신과 혼외 련애 그리고 꿈과 현실간의 간극을 알아가는 젊은 피들… 드라마는 스토리면 스토리, 연기면 연기, 화면이면 화면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데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드라마에는 없는 우리만의 진지한 고민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국드라마라면 손사래를 치던 나지만 그 후로부터는 또 어떤 건질 만한 드라마가 있을지 사이트를 뒤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라혼시대(裸婚时代)》,《잠복(潜伏)》를 거쳐《북경사랑이야기(北京爱情故事)》를 만나게 된다. 78년생 진사성(陈思成)의 각본, 감독, 주연 드라마이다. 우리와 비슷한 세대로 일본의《도꾜러브스토리(东京爱情故事)》를 보고 자랐던 그는 중국판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가, 중국에서 자란 우리가 학창시절에 겪고 느꼈을 법한 다양한 감정과 사건들이 그 드라마에 녹아있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이 개성에 맞아 본인이 실제인물이 아닐가 싶은 착각이 생기게 했다. “건달이 무섭지 않다. 문화가 있는 건달이 무서울 뿐이지(流氓不可怕, 就怕流氓有文化).” 하며 먼 강건너를 바라보던 주인공의 이 한마디는 이상하게도 중국어에 알레르기가 있던 내 머리속에 아직까지도 기억된다. 그만큼 중국드라마를 보면서 중국어가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였고 또한 내 호주머니를 털어서 중국어소설을 사본 것도 처음이였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어서 화제의 중국드라마《보보경심(步步惊心)》과《연희공략(延禧攻略)》까지 모두 섭렵하고 나니 한동안 한국드라마가 패스트푸드를 먹는 듯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리유를 알 것 같았다. 문화가 너무 상품화가 된 나머지 철학이 사라졌다는 것. 예술과 상품성이 어느 정도 결합되여 마침 아름다운, 그래서 보고 나면 생각할 거리가 있는 이 정도의 작품이 내가 보고 싶은 건데 한국드라마에서는 이제는 그런 순수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드라마는 한 사회의 거울인 것 같다. 한때는 향항이, 또 한때는 한국이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문화산품으로 아시아를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문화의 전성기 뒤에는 모두 경제적인 비약이라는 사회의 변혁이 받쳐주고 있다. 경제발전의 초기에는 사회적인 변화로 인한 전후무후한 사건과 감정들이 많고 그러한 것들은 경제의 전성기를 거치면서 예술의 손을 빌려 드라마나 영화라는 상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90년대의 향항이나 한국의 드라마였고 또 그렇게 탄생하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중국의 드라마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화강국이라는 추세를 따라 수많은 중국의 문화산품이 히트를 치고 예술로 탄생할 거란 예감도 든다. 비옥한 토양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는 법이고 문화산품이라는 식물은 경제발전이라는 이 비옥한 토양에서 우후죽순마냥 거침없이 자랄 테니까. 중국은 70년의 묵묵한 성장 끝에 이제 막 청초한 꽃을 피워내는, 래일이 더욱 기대되는 식물이다.
삼십년 하동, 삼십년 하서라고 부모님이 죽어라 반대하던 가요톱을 기를 쓰고 듣던 내가 어느덧 아이에게 아이치이 말고 다른 걸 보라고 권고하는 엄마가 돼있다. 볼 것이 없어 외국에 눈 돌리던 중국의 아이들에게 이제 중국의 문화산품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세상이 돌아온 것이다. 물론 나도 저녁마다 중국의《소환희(小欢喜)》에 미쳐있는 광팬으로서 무슨 자격으로 아이의 아이치이 사랑을 막을 수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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