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9-10-30 14:01:57

“신서연, 니 옷은 어디에 뒀어?”
자기 덩치만한 책가방을 메고 학교 대문을 나서는 딸애의 몸에 아침에 입혀보냈던 겉옷이 보이지 않는다. 조급한 내 마음과 상관없이 딸애의 눈동자는 단순하고 해맑다. 옷? 옷이 어쨌다고요? 평소 학원에서나 가족들에게는 나름 온천하고 꼼꼼하다는 칭찬을 받는 딸애건만 역시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 우리 나이로 7살, 정확히는 이제 겨우 6년 세월을 해빛을 본 이 아이에게 옷 챙기기는 아직도 구만 팔천리나 떨어진 남 얘기니 말이다. 어른들은 흔히 “소금 많이 먹은 사람이 다르다.”라는 연변식 속담으로 세월을 더 겪은 사람이 더 성장하고 큰 법임을 표현했다.
사회생활 십여년차, 사람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가지가지 일들에 부대낄수록 직장에서도 “소금 많이 먹은 사람이 다르다.”는 이 말이 통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갓 입사하는 직장 초년병 시절에는 누구나 공통으로 겪게 되는 직업병이 있다. 바로 ‘나 잘 났소’병이다. 학교에서 사회로 역할전환을 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천지를 진감할 큰 꿈이 있다. 무한한 가능성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초년병들은 내가 잘났고 내가 질서를 잡아줘야 하고 세상이 나에게 맞춰줄 줄로 기대한다. 나 역시도 부러지기 쉬운 비성숙한 이십대의 오기로 세상이 한없이 만만해보였던 시절이 있다. 한 분야에서 시간으로 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아닌 초년병들에게는 흔히 새로운 분야를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있는 법이다. 다만 그것은 새로운 분야에 입문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지 내가 인재라서가 아니다. 그러나 피 끓는 젊음은 왕왕 이것을 ‘내가 잘 났소.’로 리해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잘나고 보니 직장생활에 파김치처럼 길들여진 선배들이 얼마나 볼품없고 만만해보일가. 이 사람은 옷차림이 후줄근하구만, 이 사람은 맺고 끊고가 확실한 맵짠 사람이 못되는구만, 이 사람은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구만… 이렇게 자기만의 자대로 쉽사리 판단을 해버리고 나면 정말로 이 직장에는 나만한 인재가 없고 나만한 능력자가 없다. 자연히 선배들이 나에게 베푸는 호의는 내가 잘났으니 응당한 것이요, 따뜻한 밥 한끼 사주고 관심어린 충고 한마디 주어도 잘난 어깨에 힘만 실어줄 뿐이다. 젊음은 이렇듯 타고난 재능과 인정받던 과거만을 믿고 쉽게 자기에게 ‘인재’라는 타이틀을 씌워준다. 그럼 학생시절의 ‘인재’는 과연 사회생활에서도 유효한 인재일가?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늘 축구선수들의 자료를 찾아보며 그 성장과정을 들여다보기를 즐긴다. 왜냐하면 축구선수로서의 그들의 삶에는 우리 사회생활에도 통하는 성장법칙이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축구뉴스를 보다 보면 ‘유망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청소년 축구경기에서 반짝 빛을 발하거나 어느 한 경기에서 발휘가 좋으면 그에게는 대뜸 유망주라는 딱지가 붙는다. 한국의 박주영 선수가 그랬고 리청용 선수도 그랬다. 그렇다면 그 시기를 빛내던 유망주들이 모두 축구선수로서 큰 성공을 이루었을가? 그렇지는 않다. 물론 유망주였던 것만큼 인기도 높고 해외리그 진출도 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천재소리를 듣던 박주영 선수가 전성기를 넘긴 지금 처한 위치는 기대치를 미치지 못하는 셈이고 리청용 선수도 물론 한차례의 큰 부상으로 몸이 상한 원인도 있겠지만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한국 국가팀을 은퇴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물론 축구는 잘했지만 그들에 비해서는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던 기성용 선수가 해외리그나 국가팀에서의 활약이 더욱 눈부신 것도 사실이다.
유망주가 왜 꼭 천재선수로 성장하는 것은 아닐가? 그것은 사회생활이 재능과 끈기와 노력과 운을 겸비한 천시, 지리, 인화적인, 복합적인 요소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가수가 꼭 노래만 잘한다고 유명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축구선수가 꼭 축구만을 잘한다고 유명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내가 속한 출판사도 글만 잘 쓴다고 훌륭한 편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유망주는 한 분야에 입문할 때의 칭호일 뿐이고 그 분야에서 어떻게 좌절하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자신을 이겨내고 성장하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정인 것이다. 삶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지루한 고험을 거쳐야 하는 길고도 먼 려정이다.
내 눈에는 볼품없던 선배라도 그는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수많은 고민과 좌절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다. 우리는 매 순간의 선택이 달라서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게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선배가 이런 선택의 기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후줄근한 옷차림을 하고 아무리 맵짜지 못하고 능력이 없는 선배라도 그는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시간들을 겪고 고민하고 선택을 해온 사람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그는 나보다 ‘소금을 많이 먹은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먹은 소금의 량 만큼 그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시간들을 알고 리해하고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에게만 타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나움을 피해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사슴도 있고 멀리 보고 먼저 움직이는 목이 긴 기린도 있다. 굼벵이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사회라는 이 정글에 오래 남아있는 선배들에게는 못났든 잘났든 모두 자기만의 재주 하나씩은 갖추고 있는 법이다.
만날 물건을 두고 다닐 딸애를 걱정하면 그 시기를 거쳤던 선배엄마들이 다독인다. 그런 때가 다 있었노라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세월을 몸으로 녹여내신 직장의 선배님들도 자신감으로 부푼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너네 심정 다 알아. 그러니까 천천히, 차분히 그리고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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