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읽고서
날짜 2022-05-19 15:52:36

이름이란 한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가? 
그 이름 뒤에 숨겨진 기대와 사랑과 판단들은 어떤 방식으로 한 인간을 정의하고 이야기할가? 줌파 라히리의 소설《이름 뒤에 숨은 사랑》과 함께 ‘이름’에 관한 단상들에 빠져보는 시간이였다.

이름 속의 우연들
우리는 태여남을 선택할 수 없듯이 이름 또한 부여받는다. 부모님 또는 가문의 전통에 의해 혹은 어느 특정된 누군가에 의해 이름이 지어지고 불리워지고 그 부름에 반응을 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알아간다.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소설 속 주인공 고골리의 이름은 우연 속에 사고처럼 지어진다. 인도인 부모님의 아들로 태여난 그는 어찌하다 보니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출생하게 된다.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 적혀진 편지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마당에, 이름 없이는 퇴원이 불가한 시급한 상황에 놓여진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예상치 못한 사고 속에서 자신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었고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디게 한 동력이 되여주었던 고골리의 《외투》라는 책을 떠올렸고 아기의 애칭으로 ‘고골리’라고 등록한다.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그 이름, 부모님한테는 삶 자체를 의미하는 가장 큰 축복을 담은 이름이였다. 유치원에 가던 첫날, 부모님은 아들에게 보다 미국식인 ‘니콜’이라는 이름을 등록해주었지만 어린 고골리는 결코 새 이름을 원하지 않았다. 낯선 그 누군가가 되는 게 싫었던 아이는 원래 이름을 고집했고 등록원서에는 도로 ‘고골리’로 고쳐졌다. 그리고 미국문화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의 이름이 점차 싫어지기 시작했다. 인도인 혈통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서 태여났지만 하필이면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로씨야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게 터무니없다고 느껴졌다. 결국 대학입시를 계기로 ‘니콜’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서류들을 바꾸어버린다. 수많은 우연의 련속들 그리고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지울 수 없는 그 이름 ‘고골리’… 그는 ‘고골리’와 관련된 모든 걸 피해가면서 단순하게 ‘니콜’로 살려고 애쓴다. 

이름 속의 필연들
가족과 ‘고골리’를 아는 모든 것들에서 달아나버린 그는 녀자친구 맥신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어울려 순수한 미국식 삶을 영위해나가려고 하지만 ‘니콜’ 안에 바꿀 수 없는 혈육의 정과 전통들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고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땅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셨던 부모님의 어려움을 리해하게 되였고 인도에 남아있는 친지들과 미국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도인 친구들과의 끈끈한 정을 알아가게 된다.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기차사고를 떠올렸고 그의 14살 생일날 아버지한테서 선물받았던, 단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모음집》을 다시 집어든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하게 젖어오는 감정을 오롯이 느껴본다.
고골리는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인도계 미국인 모슈미와 결혼하지만 나중에는 헤여지고 만다. 모슈미는 인도나 미국이 아닌 프랑스를 지향했고 빠리지앵(巴黎人)으로 살고저 모든 노력을 한다. 제3의 문화를 선택함으로써 마음속의 갈등을 무마하려 애쓰는 그녀를 고골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피 속에 녹아있는 운명의 필연을 외면한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일가? 그녀와의 리별을 경험하고 나서 그는 어머니를 다시 바라보게 되였고 부모님이 소중하게 지켜온 우정과 사랑, 향수(乡愁)에 조금 더 공감하게 되였다. 우연이라고 우기고 있었지만 숙명처럼 주어진 ‘고골리’라는 이름을 다시금 사랑하게 된다.

이름을 정의하는 것들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결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 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 뿐.” 이름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여나는 그 순간에 자신이 처해있던 사회적 환경, 가정적 요소, 시대적 특징, 언어학적 의미… 이 모든 것들이 종합된 산물이라 생각된다.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의 념원, 가치관과 가문의 전통의 체현임은 더더욱 말할나위 없다. 그리고 이런 이름으로 알려진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부동한 단계에 나름의 모습을, 사명을 수행해나갔을 것이다. 자식으로, 녀성으로, 직장인으로, 조선족으로, 중국사람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부동한 이미지들을 펼쳐가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들은 나 자신이면서 또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이기도 할 것이다.
마르케스는《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과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나의 이름 뒤에 숨겨진 존재는 그 이름으로 기억된 ‘나’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존재,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처구니 없고 불편한 존재였을 수도 있는… 그런 모습들? 그리고 내가 아는 ‘나’는? 결국은 자신이 착각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인 건 아닐가?
다 상관없다. 아니, 다 좋았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떠올려지는 모습이 결국은 어느 순간 그와 함께 하던 ‘나’였을 거니까. 그리고 살아가는 나날들에 있었던 수많은 우연과 필연들이 모여져서 지금의 내가 되였다. 
나의 이름 속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삶을 견뎌낸 이야기들이 기록되여있고 수많은 추억의 시간 속에 남겨진 사랑과 아픔, 깨달음과 성장이 받침되여있다.
고요한 이 겨울밤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고 삶의 려정에서 축복과 믿음, 사랑을 주었던, 응원해주고 손 내밀어주던 따뜻한 이름들에 감사드려본다. 그 소중한 이름들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에 소중히 새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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