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지부생활 >> 특별기획

“기층사업을 잘하려면 정을 주고받아야지요”

― 화룡시 투도진 진흥촌 제1서기 리춘희
날짜 2021-11-10 14:53:02 조회


7월 14일, 화룡시 투도진 진흥촌 빈곤해탈 임무를 마친 촌주재 빈곤층부축 사업대 대원들이 향촌진흥 사업대와 무사히 인수인계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였다. 사업대 대원들이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촌민들은 아침 일찍 배웅하러 나섰다.
3년 남짓이 진흥촌의 빈곤해탈 난관공략 사업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 맡은 바 사업을 출중히 완수한 촌주재 제1서기 리춘희는 촌당지부와 촌민위원회 간부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동안 저의 사업을 열성껏 지지해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이제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 한번 남에게 보인 적 없는 그녀였다.
눈물을 흘린 사람은 리춘희 한사람만이 아니였다. 진흥촌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학철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리서기와 사업대 여러분들의 덕분에 지금의 생기 넘치는 진흥촌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주십시오. 리서기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향촌진흥도 잘할 것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리춘희와 사업대 대원들과 함께 촌의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을 치른 김학철은 누구보다도 리춘희의 로고를 잘 알고 있었다.
2017년 12월, 화룡시위생건강국 사업일군인 리춘희(44세)는 화룡시 투도진 진흥촌 제1서기로 파견되였다. 98세대 빈곤호에 빈곤인수 171명인 진흥촌은 극빈촌으로서 기초가 박약하고 빈곤호가 많아 빈곤해탈 임무가 간고했다.
“기층사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책임이 무거운 만큼 리춘희는 더욱 부지런히 사업했다. 리춘희는 먼저 기층당조직 건설부터 틀어쥐였다. 규정제도를 엄격히 실시하고 정규적인 당학습과 당활동을 통해 촌간부들과 당원들을 이끌어 정신면모부터 일신시켰다. 특히 빈곤해탈 난관공략에 관한 당과 정부의 정책을 자상히 해독해주어 당원, 간부들로부터 빈곤에서 해탈할 수 있다는 신심을 갖게 하였고 촌민들 속에서의 당원간부 특히 로당원들의 위망을 빌어 촌민들의 빈곤해탈 신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시작된 진흥촌의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은 하나 또 하나의 난제들을 해결해나갔다. 리춘희와 사업대 대원들은 진흥촌 빈곤해탈 방조부축 단위인 국가배전망 화룡시전력공급회사, 주부유보건원, 화룡시공증처, 화룡시서산소학교의 든든한 지원하에 2018년에 진흥촌 98세대 빈곤호들의 빈곤해탈 임무를 완수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3년 동안에 녕파 부축자금 76만원을 쟁취하여 330평방메터 되는 편민봉사중심을 새로 짓고 제반 빈곤해탈부축 관련 자금으로 13대의 트랙터, 결속기 등 농기계들을 구매하여 촌민들의 농사에 편리를 도모해줌과 동시에 농기계 임대, 양어장 임대, 소사양 등 산업대상을 발전시켜 촌집체 수입을 늘였다. 2020년에 이르러 촌집체 수입은 2018년의 2만원으로부터 20만 4700원에 이르렀는데 이는 진흥촌의 향후 향촌진흥 사업에 든든한 기반을 닦아주었다.
리춘희가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촌민들이 자발적으로 배웅하러 나왔다.
“정말 가는구만. 아쉬워서 어쩌지. 그동안 정말 수고했네.”
촌민들은 금방 촌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사업을 인계하고 나온 리춘희를 둘러싸고 석별의 아쉬움을 호소했다. 지난 3년 동안 휴식일이 따로 없이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촌민들을 위해 로고를 마다하지 않은 리춘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촌민들이였다.
“기층사업을 잘하려면 정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진흥촌주재 제1서기를 맡은 날부터 온갖 정력을 촌민들에게 몰부어온 리춘희의 페부지언이다. 리춘희는 틈만 있으면 촌민들의 집을 방문하고 촌민들과 함께 ‘수다’를 떨었다. 뿐만 아니라 촌의 년장자들을 ‘마다매’, ‘마다바이’라고 부르면서 항상 살가운 모습으로 촌민들을 대하고 그들의 생활과 건강을 돌봐왔다. 그녀의 진심과 정성에 감화된 촌민들은 길에서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손을 붙잡고 “우리 집은 언제 놀러 오겠나?”, “저녁에 우리 집에 오게, 내 맛있는 걸 해줄게.”라고 말을 할 정도로 끈끈한 ‘가족’의 정을 주었다. 사실 촌민들은 리춘희가 고중입시를 앞둔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진흥촌으로 내려온 것도 알고 있었고 그동안에 그의 남편이 사고로 돌아가고 집에 아들 혼자 남아 생활하면서 올해 대학입시까지 치른 사정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2018년은 진흥촌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관건적인 해였을 뿐만 아니라 리춘희의 아들이 고중입학 시험을 앞둔 관건적인 해였다. 리춘희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모든 정력을 사업에 몰부었다.
2018년 8월의 어느 일요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터를 지키고 있던 리춘희는 남편이 사고로 생명이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남편이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에 그녀는 주체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는 비통을 이겨내야 했다. 진흥촌이라는 ‘대가족’이 리춘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가정을 희생하면서 대가족을 위한 길에 나선 리춘희는 밤낮 따로 없이, 주말 따로 없이 촌민들의 친딸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건강을 챙겼다.
“리서기, 어디 가서나 몸 건강히 사업을 잘하오.”
“리서기, 시간 나면 아무때라도 놀러 오오.”
촌민들의 환송을 생각지도 못한 리춘희, 가까스로 촌간부들과의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촌민위원회 사무실을 나선 그는 끝내 흐느끼고 말았다. 그동안 사업실적을 긍정받아 2019년 ‘전 성 사업단위 빈곤해탈 난관공략 공헌상’, 2021년 ‘주 우수당사무 사업일군’, 2021년 ‘주 녀성공훈 기준병’ 등 영예를 한몸에 지니긴 했지만 지금처럼 촌민들이 나와 배웅해주는 것보다 더 아름찬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진흥촌에서의 3년은 저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시각 리춘희와 촌민들의 석별의 아쉬움이 얼마나 큰가는 그들의 눈물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필자는 연변일보사 사회부 기자)
작가:추춘매 편집: 사진:

핫 클릭

  1. 1 고향 그리고 ‘어머니’
  2. 2 “에루화 어절시구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
  3. 3
  4. 4 연길의 명소, 빈하공원 그리고 다리
  5. 5 변치 않는 초심으로 ‘연변이야기’ 전할 것
  6. 6 연변의 자신감
  7. 7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
  8. 8 한 공산당원의 일편단심
  9. 9 평범한 로당원의 아름다운 충성
  10. 10 안해의 일기

칼럼

主管:中共延边州委组织部 主办: 中共延边州委组织部 出版:支部生活杂志社
地址:吉林省延吉市公园路2799号A座 邮编:133000 电话: 0433-2513269 E-mail: ybzbsh@126.com
吉ICP备:17002320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