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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농민대학


날짜 2021-09-27 14:02:3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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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50년대, 연변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새벽농민대학(려명농민대학)을 추천하고 싶다.
1958년 5월 1일, 우리 나라 첫번째 ‘새벽과외농민대학’이 창립되였다. 창시자는 김시룡 1)이다.
이는 1958년 2월, 김시룡이 전국 18개 성, 시의 문맹퇴치 선진단위 대표로 북경에 가서 국무원 부총리 진의의 지명발언으로 연설할 때 과외농민대학을 꾸릴 수 있는 조건이 되였다고 호언장담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 진의 부총리는 상을 치면서 김시룡에게 농민과외대학을 꾸릴 수 있는가 재차 묻고 나서 “좋습니다. 연변에서 과외농민대학을 세웠다는 보고를 받으면 그 즉시 전세계를 향해 새 중국에 농민대학이 섰다고 선언할 겁니다.”고 말했다. 그는 김시룡의 숙소까지 찾아와 “연변조선족은 교육토대가 좋고 우수한 민족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변에서 하루빨리 과외농민대학을 설립했다는 희소식을 듣고 싶습니다.”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귀로에 오른 김시룡은 은근히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세상 무서움을 모르는 김시룡도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과외농민대학을 꾸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황차 이렇게 큰 사업건을 현이나 주, 더구나 주덕해에게 사전보고도 없이 즉석에서 큰소리를 쳐놓고 보니 뒤근심이 태산 같았다.(주: 박하림 작, <해란강의 넋>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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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역에 내린 김시룡은 급급히 주덕해 서기를 찾아갔다. 주덕해 서기를 만나자 김시룡은 고개를 숙이며 자기반성부터 했다.
“주서기, 대회정황을 보고하기 전에 반성부터 하겠습니다.”
“허허. 급해말고 먼저 자리에 앉소… 근데 김사장답지 않게 무슨 반성이요? 김사장은 불평불만을 부려야 제격인데… 허허허.” 주덕해 서기가 소탈하게 웃었다.
“이번에 조직에 청시하는 절차도 없이 전국 회의에서 과외농민대학을 세우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생각해보니 큰 오류를 범한 것 같습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만 염통이 불어난 김에 진의 부총리한테 과외농민대학을 꾸리겠다고 큰소릴 쳤는데 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속이 황황해납니다. 아무리 과외대학이라도 대학인데 간단하게 뚝딱 꾸릴 수도 없고…”
“다시 말해보오, 금방 뭐라 했소? 과외농민대학이라 했지?” 주덕해가 정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급하게 물었다.
“예. 진의 부총리가 제한테 제사까지 써주었습니다.”
김시룡은 가방에서 진의 부총리가 쓴 제사를 꺼내 보였다.
“허허허. 과시 김시룡다운 과감한 발상이구만 허허… 력사에 남을 일을 했소. 자치주당정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김사장이 해냈소. 잘했소. 전국 회의에서 그런 발언을 한 걸 보니 김사장은 담도 크오. 연변을 위해 큰일을 해냈소.” 주덕해 서기는 김시룡의 손을 뜨겁게 잡고 희색이 만면했다.
“정말 그렇다면 한시름 놓았습니다… 큰소릴 치고는 뒤가 쫄려서 죽을 지경이였지요.”
 그제야 김시룡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주: 박하림 작, <해란강의 넋> 참조)
주덕해 서기는 두가지 면에서 김시룡의 농민과외대학 설립 선언을 적극 지지했다. 첫째는 정치, 경제와 문화 제반 분야에 파급되는 효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소재의 농민대학이 가지는 이미지와 민족지역 홍보를 념두에 둔 정치적인 계산이였고 두번째는 연변이란 민족지역에서 과학지식을 소유한 신형 농민을 대량 양성해 획기적인 농업발전을 획책하는 것이였다.
“돌아가서 기다리오. 인차 주당위에 교부해서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과외농민대학을 꾸리는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주덕해는 주당위 문화교육부 부장 리희일과 교육처 처장 량정봉에게 지시해 준비위원회를 세우게 했다. 교육취지는 ‘현지 로농업생산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주의각오가 있고 현대농업과학기술을 장악한 붉고도 전문적인 근로자를 양성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동성용공사(향)당위 서기 박안철을 명예교장으로 하고 김시룡, 리학림을 명예부교장으로 하며 최경택을 교장으로 하는 지도기구를 내왔다.
대학 명칭도 새 중국의 첫번째 과외농민대학이라는 점과 김시룡이 주임을 맡았던 새벽농장 이름에서 새벽이란 이름을 그대로 따서 ‘새벽과외농민대학’이라 하기로 결정했다. 성 해당 부문에 보고를 써올리자 ‘연변의 영광일 뿐더러 우리 성의 영광’이라면서 인차 비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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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석달이 지난 1958년 5월 1일, ‘새벽과외농민대학’이 설립되였다.
1960년, 연길현 동성인민공사 새벽반농반독대학으로 개칭했다. 1974년에 연길현 ‘새벽 5.7대학’으로 개칭하고 1980년에는 성인민정부의 심사비준을 거쳐 ‘연길현새벽농민대학’으로 개칭했다. 1984년에는 중앙교육부의 허가를 받고 농업학, 도작(稻作), 축산 등 4개 학과를 설치하고 학제는 3년제였으며 전 주에서 학생을 모집했다. 현재 새벽농민대학은 로동자대학과 합병해 연변직업기술학원으로 개칭되였다. 동성용향 소재의 대학건물은 페쇄된 상태지만 세전의 벌에서 울려퍼졌던 새벽농민대학 학생들의 노래는 지금도 메아리로 남아있다.

 
 1) 김시룡(金时龙): 전국농업로력모범, 1946년 연길현 영성촌에 연변지역에서 첫번째 호조조를 조직하고 1949년 길림성 1등모범 호조조, 1949년 3월 길림성특등로력모범으로 당선. 1950년 전국로력모범으로 당선, 전국로농병대표대회 유일한 조선족 대표. 1951년 3월 연변의 첫번째 초급사인 ‘김시룡농업생산합작사’를 설립. 1952년 8월 전국로력모범대표단의 일행으로 쏘련(로씨야)을 견학, 1953년 3월 12일 길림성에서 첫번째, 전국에서 두번째로 되는 집체농장인 ‘새벽집체농장’을 설립, 농장 주석을 담임. 1955년 8개 촌을 련합해 ‘려명고급농업합작사’를 설립, 사장으로 당선. 1958년-1966년 동성인민공사 사장, 1954년-1965년 제1, 제2, 제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1978년-1988년 제5, 제6기 전국정협 위원.
 
 
 

 
 
작가: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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