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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48명 대가정의 가장입니다”

─ 룡정시장애인정양보호원 박해옥 원장의 이야기
날짜 2021-08-16 10:21:21 조회


룡정시 지신진 룡남촌에는 특수 군체로 구성된 대가정이 있다. 이 가정의 가장을 아이들은 친절하게 ‘엄마’라 부르고 로인들은 대견스레 ‘딸’이라 부른다. 그가 바로 룡정시장애인정양보호원 박해옥 원장이다.
7월 29일, 본사 취재진이 룡정시장애인정양보호원을 찾았을 때 박해옥 원장은 한창 가족성원들과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넘나물을 뜯고 있었다.
“이런 로동을 통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에게 스스로가 필요해보이고 자신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화도 나눌 수 있어 병 재발도 예방할 수 있고 또 이들에게 장려도 해주어 로동의 가치를 느끼게도 합니다.”
룡정시장애인정양보호원은 2009년에 설립되였다. 그가 이 보호원을 설립한 데는 20여년 동안 장애인복지사업에 몸 담아온 남다른 경력과 깊은 련관이 있다. 1989년, 박해옥은 연변재정무역학교를 졸업하고 룡정시장애인련합회에 배치 받게 되였다. 사업에 열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모든 심혈을 쏟아부으며 사업했다. 사회적 약소군체와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정식으로 출근한 후 얼마 안돼 박해옥은 장애인련합회의 직원들이 수화를 몰라 롱아인들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꼭 수화를 배워 롱아인들의 대변인이 되여주리라 다짐했다. 여가시간을 짜내 박해옥은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반년 가까이 밤잠을 패가며 애쓴 보람으로 끝내 롱아인들과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는 장애인복지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그들과 마음을 소통하면서 관심을 베풀어주려고 노력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도시발전계획의 진행과 더불어 룡정시내에서도 단층집 파가이주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 때 박해옥은 세를 맡아 살고 있던 일부 빈곤장애인들이 파가이주로 일시에 지낼 곳이 마땅치 않게 되였다는 사정을 접했다. 이에 박해옥은 모금을 통해 시장가격의 절반에 해당되는 저렴한 비용으로 43가구의 장애인가정에 창고, 남새움과 실내 화장실이 달리 주택을 지어주는 사업에 착수했다.
장애인가정의 생활고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던 2004년의 어느 날, 모든 일에서 항상 긍정적 에너지를 보였던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모진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간 그는 직장암이란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들의 생활고문제 해결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수술날자를 예약해놓고서도 매일이다싶이 현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이곳저곳을 꼼꼼히 체크했다. 큰 수술을 받고 18일 만에 퇴원한 박해옥은 또다시 현장으로 뛰여갔다. 그 후 2년간, 박해옥은 추가로 82가구의 장애인가정에 집을 지어주면서 힘들게 회복을 하고 있던 중 암세포가 다른 데로 전이되면서 두번째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여 란소수술과 자궁수술까지 받았다. 항암치료를 몇번 받고 난 박해옥은 몸상태가 말이 아니였지만 오래동안 장애인사업에 종사해오면서 간직해온 숙원만은 꼭 이루고 싶었다.

보호원의 가족들과 함께.

박해옥은 빈곤가정들에서 장애어린이를 키운다는 것이 너무나 힘에 부치는 일인 줄 잘 알고 있었다. 보호자가 없는 지체장애인이나 지력장애인 그리고 정신질환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돌봐줄 전문기구가 더없이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장애인복지사업을 해오면서 박해옥은 사정이 딱한 장애아이들을 한명, 두명 자기 집에 데려다 키웠는데 어느새 17명까지 늘어났다. 이에 박해옥은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딸애가 태여나기 전 장애인아이가 한명이였었는데 딸이 태여나던 해 4명으로 늘었고 후에는 17명으로 늘었습니다.”
남편과 딸도 적극 협조하면서 박해옥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그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였다.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하고 도울 방도를 모색해오던 박해옥은 그들에게 가정과 같은 따뜻한 집을 마련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장애인보호시설을 꾸려 진정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약소군체들에게 힘이 되여주고 싶었다. 2009년, 박해옥은 가정집을 팔아 모은 돈과 관련 부문 및 애심인사들의 지지하에 건축면적이 900평방메터 되는 2층 건물을 지어 24개의 방을 내와 45명의 빈곤장애인들을 무료로 받아들였다. 장애인들이 보호원에서 근심, 걱정 없이 생활하게 하는 한편 그들에게 간단한 기술과 기능을 배워주고 재활훈련도 시켜주었다. 그 후 박해옥은 장애인보호원을 운영하면서 지원대상을 독거 장애로인과 아이들로 늘이고 돌도 직접 날라오고 나무도 한그루, 두그루 심으며 시설을 확장하고 호리원도 초빙했다. 보호원은 지금에 와서 부지면적 만 3000평에 건축면적이 3500평이 넘는 규모까지 이르렀다. 보호원의 살뜰봉사와 차별이 없는 보살핌은 점차 사람들의 승인을 받으며 식구도 눈에 띄게 불어 지금의 148명의 대가정으로 되였다. 현재 보호원에는 생활자립능력이 없고 가족도 없는 로인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해당 부문의 소개로 온 새 식구도 있고 박해옥 원장이 거리에서 우연하게 발견하고 데려온 새 식구도 있다. 대부분이 의지할 데가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박해옥은 종래로 돈을 따지는 법이 없이 선뜻 모셔와 살뜰히 보살펴주어 편안한 만년을 보내게 했다.
장애인과 로인들을 보살피는 것을 자신의 밀어버릴 수 없는 책임으로 간주한 데는 그만의 말 못할 가정사와 아픈 과거가 작용했다고 한다. 그런 원인에서 이들을 위한 자신의 나눔은 삶의 당연한 실천이자 스스로와의 약속이며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였다고 박해옥은 고백했다.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경축대회에 초청돼 대표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 박해옥(앞줄 오른쪽 세번째 사람).

지난 7월 1일, 박해옥은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경축대회의 초청을 받아 위대한 력사의 순간을 마음에 새겼다.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공산당원으로서 또 기층에서 약소군체를 보살피고 있는 한 사업일군으로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수년간 아이들의 어머니, 로인들의 딸로 이 특별한 대가족을 가꿔오고 보호해온 박해옥은 ‘전국 민족단결진보 모범개인’ 등 많은 영예들을 받으며 지난 201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돐 경축대회 당시에도 북경에 초청 받았다고 한다. 올해 또 생각 밖으로 초청 받게 돼 너무 감개무량하다며 이는 당과 나라가 약소군체에게 보내는 관심과 사랑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보호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꼭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한테서 어려웠던 저의 과거를 보게 돼서 더욱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사람들을 못 떠나보내겠습니다.” 30년 넘게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온 세월 동안 박해옥 원장이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더욱 큰 울림으로 들렸다.
 
작가:김철, 김동호 편집: 사진:장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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