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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백성 투쟁의 노래’

― 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를 찾아
날짜 2021-05-12 15:03:02 조회


지난 4월 26일, 봄 파종이 한창인 평강벌을 달려 화룡시 투도진 룡문촌 약수동에 다달으니 마을 서쪽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잡은 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    동북지역 첫 인민혁명정권인 약수동쏘베트정부
█    동북지역 첫 인민정권 보위 홍색무장대인 평강구(연화)유격대
█    동북지역 첫 중심현당위인 중공연(길)화(룡)중심현위원회
█    동북지역 첫 농촌당원대표대회인 중공동만당원대표대회
█    동북지역 첫 농민대표대회인 연화농민대표대회
█    동북지역 첫 농촌군사위원회인 평강구군사위원회
█    동북지역 첫 구급쏘베트정부인 평강구쏘베트정부
█    동북지역 첫 농민혁명운동주제가인  〈굶주린 백성 투쟁의 노래〉
90여년 전, 이 모든 것의 탄생에는 약수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일제통치하에서 봉건통치자들에 맞서 벌어진 력사적 장거는 바로 유서 깊은 약수동에서 잉태되였다.
1930년 2월에 설립된 중공연변특별지부위원회의 령도하에 4월 24일, ‘5.1투쟁행동위원회’가 설립됐다. 1930년 5월,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은 ‘토지혁명을 일으키고 쏘베트정권을 수립하자!’ 등의 구호를 제기하고 ‘붉은 5월 투쟁’을 전개했다. 그렇게 시작된 투쟁은 5월 23일부터 부분적 농촌에서 토지혁명투쟁에로 넘어갔다.
중공연변특별지부에서는 1930년 4월말 황포군관학교 출신인 조선족공산당원 신춘을 혁명군중기초가 좋은 약수동일대에 파견하여 토지혁명을 전개하도록 했다. ‘붉은 5월 투쟁’ 속에서 약수동의 농민들은 농민적위대를 조직하여 지주의 장원으로 쳐들어가 지주의 고리대문서를 태워버리고 량식과 재물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30년 5월 27일은 약수동과 그 일대의 농민군중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약수동 상촌의 팔간집마당에서 열린 군중집회에서 신춘은 “약수동쏘베트정부가 창립되였다!”고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동북에서의 첫 민중정권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였다. 대대손손 착취와 빈궁에 짓눌려 울분 가득한 삶을 살아온 농민들에게 크나큰 경사였다. 군중들에 의해 쏘베트정부 위원들이 선출되고 대회는 5월 30일 대규모 봉기를 일으킬 것을 결정했다.
구호를 웨치면서 단행된 시위행진은 사흘 동안 계속되였다. 분노한 군중들은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일제주구 몇놈을 붙잡아 처단했고 고리대금업자들의 재물을 몰수하여 빈곤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고리대문서와 소작료계약서를 불태워버렸다. 리경천 등 약수동농민적위대 대원들을 필두로 무어진 습격조는 5월 30일 밤에 18자루의 소총과 권총 1자루로 투도구일본령사분관을 습격했다. 약수동의 농민들도 거세찬 투쟁에 뛰여들었다.
폭동 후 일제경찰들은 약수동에 덮쳐들어 100여명의 청년을 체포하였다. 약수동쏘베트정부는 일제의 련속부절한 탄압으로 활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였다. 하여 약수동쏘베트정부는 창립된 지 3일 만에 부득불 지하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1939년 6월초에 일본침략자들과 지방반동군벌의 이중진압에 의해 약수동쏘베트정부는 와해됐으나 그 명맥은 이어졌다. 7월 10일에 첫 당원대표대회가 소집됨에 따라 평강구당위가 설립되고 8월 13일에는 동만 제1차 당원대표대회를 소집해 연화중심현위원회를 설립했다. 8월말, 중공평강구위에서는 약수동의 농민들을 령도하여 재차 토지혁명을 단행했다. 그들은 약수동 상촌의 약수동쏘베트가 창립되던 곳에서 또다시 쏘베트대표대회를 열고 ‘쏘베트건립대회결의안’을 채택하고 평강구쏘베트정부의 창립을 선고했다. 같은 해 10월, 중공평강구위는 투쟁의 수요에 따라 약수동을 떠나 장인강 쪽으로 이동하면서 쏘베트정부를 잠시 취소하고 농민협회가 쏘베트정부의 사업을 대체하게 하였다.
5월말에 설립되여 6월에 해체된 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부,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동북지역에서의 첫번째 인민정권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당년 100세대도 안되는 이 산간마을에서 박상활, 김순희 등 70여명 항일영렬들이 용솟음쳐나온 데서 약수동은 정녕 ‘혁명의 요람’으로 불리웠다.   
 
90여년을 박상활 렬사의 분신이 되여 이곳을 지킨 우거진 버드나무 한그루… 1931년, 박상활 렬사가 도목구적위대 대장으로 파견되자 떠나기 전 심어놓은 나무이다. 혁명의 정신을 인민군중 속에 뿌리내려 이 땅에서 침략자를 몰아내고 혁명을 마지막까지 힘 다해 싸우겠다는 결심을 한세기 가까이 모든 것을 목격해온 나무가 대변해주는 듯했다.
1936년 7월에 동북항일련합군 제1군 제2사 군수부장으로 임명된 박상활 렬사는 1937년초에 임무수행중 발에 동상을 입고 장백현 흑곰골-동북항일련군 밀영에서 치료를 받았다. 의사와 약재가 결핍해 상태가 악화되자 그는 스스로 통졸임뚜껑으로 ‘톱’을 만들어 동상을 입은 발을 잘라냈다.
그해 12월 4일, 일본‘토벌’대에 습격당해 포위되자 그는 전우들을 엄호하기 위해 시간을 벌면서 혼자서 끝까지 싸우다 벼랑 끝에 유인한 후 중상을 입고 끝까지 싸우다 벼랑에서 뛰여내려 희생했다.
 
작가:김철 편집: 사진:장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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