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이여,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 홍수방지영웅 오승룡, 장림에게 ‘모범조직사업간부’칭호 추서
날짜 2020-10-09 15:18:58 조회


오승룡, 남, 조선족, 1972년 11월 출생, 1990년 10월 사업 참가, 2005년 4월 중국공산당 가입, 대학학력.
왕청현 사법국 선전과 과원, 인사국 중재과 과원, 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월급복리과 과장, 부국장, 2018년 7월 왕청현당위 조직부 부부장 겸 로간부국 국장 력임.
선후로 전 주 법률상식보급 의법처리 사업선진인물, 조화왕청 창조 인사신소 좋은 간부, 인력자원및사회보장사업 실적목표심사 선진사업일군 등 영예칭호 받음.
장림, 남, 조선족, 1986년 8월 출생, 2009년 8월 사업 참가, 2011년 3월 중국공산당 가입, 연구생학력.
왕청현독찰심사판공실 실적평가1과 과장, 왕청현당위 조직부 제보중심 주임, 왕청현 복흥진당위 위원, 조직위원, 흥화촌 촌주재 사업대 대장.
2018년, 2019년도 련속 두해 왕청현 ‘빈곤해탈 난관공략’ 선진인물 칭호 받음.
오승룡, 남, 조선족, 1972년 11월 출생, 1990년 10월 사업 참가, 2005년 4월 중국공산당 가입, 대학학력.
왕청현 사법국 선전과 과원, 인사국 중재과 과원, 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월급복리과 과장, 부국장, 2018년 7월 왕청현당위 조직부 부부장 겸 로간부국 국장 력임.
선후로 전 주 법률상식보급 의법처리 사업선진인물, 조화왕청 창조 인사신소 좋은 간부, 인력자원및사회보장사업 실적목표심사 선진사업일군 등 영예칭호 받음.
장림, 남, 조선족, 1986년 8월 출생, 2009년 8월 사업 참가, 2011년 3월 중국공산당 가입, 연구생학력.
왕청현독찰심사판공실 실적평가1과 과장, 왕청현당위 조직부 제보중심 주임, 왕청현 복흥진당위 위원, 조직위원, 흥화촌 촌주재 사업대 대장.
2018년, 2019년도 련속 두해 왕청현 ‘빈곤해탈 난관공략’ 선진인물 칭호 받음.
련속적인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에 맞서 오승룡, 장림 두 동지는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홍수방지 재해구조 제일선에 뛰여들어 인민군중의 생명재산안전 보호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바쳤다. 9월 11일, 왕청현에서 소집된 두 홍수방지영웅의 추도회에서 우리 주는 오승룡, 장림 동지에게 ‘모범조직사업간부’칭호를 추서했다.
기세 사납게 들이닥친 홍수로 초록빛으로 우거진 산기슭이 허물어져나가고 목이버섯을 가득 깔아놓았던 강기슭이 뭉텅 잘려나갔다. 갑자기 무섭게 표정을 바꾼 강물이 다리를 쓸어가고 제방뚝을 삼키면서 두명의 홍수방지영웅을 빼앗아갔던 수해현장… 취재진은 9월 9일 오후, 왕청현 복흥진 흥화촌에 발길을 달려 취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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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10시경, 태풍 ‘하이신’의 영향으로 왕청현에서는 홍수대처Ⅱ급 비상대응이 가동되였다. 당일 18시경, 평소 1~2메터 남짓한 강폭이였던 마을의 강줄기는 급격히 불어났고 급기야 제방을 넘어 마을로 범람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마을 촌민들의 생명재산이 엄중한 위험에 처했다. 이 긴급한 관두에 오승룡은 장림, 림악강(촌주재 사업대 대원), 곽덕문(복흥진부동산관리소 소장), 왕택법(흥화촌당지부 서기)과 함께 군중 전이 사업을 조직했다. 3시간 남짓 폭우를 무릅쓰고 강기슭을 차례로 훑으며 균농(菌뙆) 11가구 30여명을 신속히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다. 22시 30분경, 전이사업중 일행이 한줄로 걸어가고 있던 제방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졌다. 순식간에 오승룡, 장림 두 동지가 차거운 강물에 빠져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두 영웅의 생명은 그렇게 폭우와 강풍이 몰아치던 그날 밤 영원히 정지되였다.
“‘마이삭’ 태풍의 영향으로 강물은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고 ‘하이신’ 태풍이 오면서 강물은 한계를 넘었습니다. 이 긴급한 상황에 오부장은 마을의 균농들이 걱정되여 저희를 이끌고 균농 전이 사업을 조직했습니다. 전이사업중 제방이 무너지면서 오부장과 장림은 물에 빠져 급류에 휩쓸려갔습니다… 저도 한쪽 다리가 물에 빠졌다가 나무를 잡고 겨우 올라왔습니다.” 흥화촌당지부 서기 왕택법은 당시 긴박한 상황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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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룡은 왕청현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부국장으로 부임해있을 때 그는 엄격히 자신을 다스리고 겸손한 태도로 늘 동료들에게 전문적인 지도와 적절한 건의를 주었다. 그는 늘 동료들에게 “조직에서 우리를 이 자리에 배치한 것은 대중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라는 뜻이요. 초면이든 구면이든 기관간부이든 백성이든 모두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며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왕청현 서대파수리공사 중추건설 전개중 인력자원및사회보장부문에서 저수지 이민들의 사회보험 상황을 심사, 확인하게 되였다. 그는 원 토지징수대상 농민에 대한 보장방안이 저수지 이민의 실제 정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고저 여러차례 길림성인사청 관련 부문에 찾아가 저수지 이민들의 실제상황을 보고하고 타당한 방안을 제출했다. 그의 내심어린 노력하에 이민 200여명 이민대상들은 양로보험을 받을 수 있게 되였고 그들의 생활은 일정한 수준의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되였다.

오승룡이 인재사업을 분담관리할 때 왕청현의 인재발전과 대오건설에 깊은 중시를 돌렸다. 외래 인재에게 안심하고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량호한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그는 왕청현 인재아빠트 건설을 다그쳐 추진하였고 선후로 10여차례 관련 부문과 조률하여 자금부족, 실내장식, 물업관리 등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는 전국 각지의 20여개 대학을 찾아다니며 선전강연을 진행하였고 왕청현 100여명의 인재영입와 고차원 인재들의 정착을 위해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그의 노력으로 33명의 우수대학졸업생들이 성공적으로 왕청현에 남아 왕청현 간부대오의 년령, 학력 구조의 곤경을 효과적으로 완화시켰고 왕청현의 지역경제 발전에 지혜와 힘을 제공하였다.
2018년 10월, 조직의 배치에 따라 오승룡은 왕청현 빈곤해탈 난관공략 감독검사 순찰과 도급단위 촌주재 간부에 대한 관리사업을 책임졌다. 200개의 행정촌, 1만 2729가구, 2만 2759명의 빈곤인구로 왕청현은 빈곤해탈 난관공략 임무가 매우 간고했다. 조직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오승룡은 빈곤층부축 정책을 철저히 파악하는 데로부터 착수하고 허심하게 간부들을 찾아다니며 빈곤해탈 난관공략 제일선의 정황을 문의했다. 그는 늘 “인민의 리익에는 작은 일이 없습니다. 특히 빈곤해탈 난관공략에는 작은 일이 없습니다. 사업을 철저히 연구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빈곤해탈 난관공략전 최전선 간부사업을 지원할 수 있겠습니까?”고 말했다. 전 현의 빈곤해탈 난관공략 진도 상황을 장악하기 위해 그는 왕청현 125개 도급단위 603명의 촌주재 간부에 대해 낱낱이 조사했다.
“오부장은 촌주재 간부의 이름만 대면 즉시 어느 촌의 누구이고 어느 단위의 누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매개 촌의 사업특징은 무엇이며 빈곤해탈 난관공략 상황, 산업발전중의 문제점까지 장악하였습니다. 탐방조사기간 사업진도가 느리고 목표를 완수하지 못하면 촌의 상황을 자세히 문의하고 돌파구를 연구하고 빈곤구제 임무를 조속히 완수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평소 촌간부들에게 큰 신임을 주는 간부라고 흥화촌당지부 서기 왕택법은 말했다.
2019년말, 왕청현은 빈곤해탈을 실현했다. 전 현의 간부군중들이 모두 빈곤해탈 난관공략의 승리로 환호하고 있을 때 그는 “빈곤해탈은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도급단위와 촌주재 간부한테 가장 중요한 일환입니다. 동시에 감독관리 부문도 절대 경각성을 늦추어서는 안됩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시간만 나면 마을을 방문하고 조사연구를 하면서 촌주재 간부들이 촌지도부와의 효과적인 련결을 잘하도록 지도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간부와 군중들이 다 만족하게끔 해야 합니다. 력사의 시련을 이겨내여 가슴에 단 당마크에 책임져야 합니다.”
라자구진 서감촌(西碱村) 제1서기 임의(任义)는 오승룡이 물에 빠져 련락이 끊겼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오부장에게 최근 사업정황을 보고하려 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 촌을 떠날 때 저한테 손 흔드는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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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 진흙이 얼마나 묻어있다면 마음속 진심도 그만큼 비례된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의 길에서 장림은 주동적으로 농촌에 내려가 착실하게 일했다. 그는 산업발전을 틀어쥐고 진심으로 대중을 위해 봉사했다. 2018년 장림은 년로한 부모님과 연약한 안해, 딸을 두고 떠나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원으로서 인민이 가장 필요할 때 앞장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대의를 선택하고 결연히 왕청현성 일터를 떠나 흥화촌 촌주재 사업대 대장직을 맡았다.
사고 소식에 슬픔에 잠긴 흥화촌 촌민들은 “처음에는 젊은 친구가 와서 형식만 차리고 떠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장림이 촌락과 밭머리에서 촌민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촌민들도 그의 진심을 느끼게 되였습니다.”고 말하면서 장림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촌민들은 장림과 가족처럼 가까워져 큰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그에게 다 터놓았다. 장림은 촌부에 있는 도서실을 자신의 숙소로 하고 촌민들의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다리 아파 움직일 수 없을 때 장림이 시내에 나가 약을 사다주었습니다. 저희 어머님 의료보장도 장림이 다 해결해주었고요. 자신의 옷가지며 이불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고…” 촌민 장경아(张庆娥)는 장림에 대한 고마움이 수없이 많다고 했다.
흥화촌의 ‘가난근원’을 찾기 위해 그는 촌민들과 부단히 소통했다. 바로 당지부의 결집력이 강하지 못하고 창업대상이 부족하며 치부의 길이 넓지 못한 것을 ‘가난의 근원’으로 꼽은 그는 증상에 맞게 정확히 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장림은 기층당건설을 틀어쥐는 데로부터 착수하고 진당위와 협력하여 촌간부를 잘 선발하고 정확히 배치하며 젊은 당원과 예비력량을 적극 발전시켰다. 동시에 조직생활 제도를 규범화하여  분기마다 전 촌의 당원들을 대상해 당교양과 주제당일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달마다 당군중 활동을 견지하였다. 광범한 당원들의 적극성을 동원함으로써 촌간부들의 사업열정을 높였다. “예전에는 회의시간을 7시로 통지하면 대부분 8시에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미리 나와서 다음 단계에 해야 할 일들을 주동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흥화촌당지부 서기 왕택법은 장림이 온 후 모두들 사업열정이 크게 바뀌였다고 했다.

지도부의 전투력이 올라온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산업전환을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여 장림은 한달간의 시간을 리용해 마을 주변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리용 가능한 자연자원과 마을의 산업발전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했다. 촌민위원회 지도부 성원들과의 토론과 연구, 판단을 거친 후 도급단위와 관련 부문과 조률하여 선후로 30만원을 투자하여 인삼재배 프로젝트를 건설해 위탁경영의 모식으로 해마다 도급기업 투자액의 8%, 2만 4000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였다. 이와 동시에 촌집체 경제의 기간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총 33만원을 투자하는 목이버섯양식 프로젝트를 건설하였다. 빈곤호들에게는 희망이 보였고 마음을 안착시킬 수 있는 좋은 일들이 잇달아 생기게 되였다. 올해 장림은 촌지도부를 이끌고 현에서 주최한 ‘산업발전·서기 힘내요’ 경기에 참가하여 총투자액 50만원의 목이버섯 산업발전 대상을 쟁취했다. 목이버섯균 25만주머니를 구입해 촌집체 독립 경영방식을 취했는데 매년 최저 수익이 총투자의 6%에 달하게 되였다. 산업발전의 ‘지속카드’와 ‘록색카드’를 잘 치러 흥화촌 58가구의 빈곤가정은 모두 1200원의 수입증대 및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빈곤해탈 목표를 실현하였다. 하루아침에 쌓아올린 성과가 아니라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과였다.
9월 2일 오전, 태풍 ‘마이삭’의 강풍과 폭우에 대응해 각 단위들에서는 홍수방지 중점 우환을 사전에 조사하고 홍수재해가 발생하기 쉬운 지역의 군중을 앞당겨 이동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촌민들의 생명재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장림은 11시부터 흥화촌 목이버섯균기지, 강뚝 량측, 마을로 통하는 다리 부근에 가서 촌주재 대원, 촌간부들과 함께 순찰작업을 진행했다. 23시가 다 돼 하루종일 굶주린 채 마을로 돌아와 복흥진 책임자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나니 평소 당뇨병을 앓고 있던 그였던지라 몸이 탈진상태에 빠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련속되는 태풍날씨로 목이버섯기지가 밀려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장림과 촌주재 간부들이 비자루를 들고 밀차를 끌고 와서 목이버섯을 거두어주었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 늦게까지 작업해 손실을 최대한 줄여주었습니다…” 균농 왕위강(王伟强)은 장림이 사고를 당한 날 목이버섯을 함께 거두면서 찍어두었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조직사업 간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헌신정신입니다.”는 말은 장림이 평소 자주 했던 말이다. 2017년 2월, 장림은 왕청현당위 조직부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간부 관련 사업에 종사한 지 2년 남짓한 그는 간부사업의 엄밀성과 중요성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간부사업은 간부군중들이 주목하는 초점이고 영광이며 더우기는 압력과 책임입니다.”고 말하면서 간부사업에 대한 요구를 높였다. 하나의 고찰방안, 조사연구 과제, 서류자료, 글자 한자, 문장부호 하나까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근무기간 그는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세가지 철칙을 세웠다. 매개 고찰 자료를 참답게 주목하고 매 한차례 담화기록을 참답게 주목하며 모든 신소처리 사업을 진지하게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은 바람과도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월의 바람은 무정하게 그의 건강에 상처를 입혔다. 장림은 장기간 과부하로 사업하면서 피로가 쌓여 몸 곳곳에 병이 났다. 젊은 나이에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어 어지럼증이 생기군 했는데 휴가를 신청해 입원치료 받아보라는 동료의 권유를 여러번 받았다. 그는 늘 “손에 있는 임무만 마치고 치료를 받겠습니다.”고 했지만 일은 끝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는 제대로 된 입원치료 한번 받지 못했다.
“촌부의 불은 새벽 1시에도 항상 켜져있었습니다. 자기 가정도 있는데 아픈 몸으로 마을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빈곤호 아이들에게는 새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었습니다. 축구며 탁구며 기타 등 악기도 잘 다루는 다재다능한 청년간부였지요. 장림과 함께 우리 마을을 더 잘 건설해보려 했는데…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너무 가슴 아픕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참 안타깝습니다.” 흥화촌 부녀주임 어락향(于乐香)의 눈물은 장림에 대한 감사함이고 그리움이였다.
무정한 수마는 두 영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일터를 사랑하고 부단히 진취하며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정의를 견지하며 렴결봉공하는 정신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왕청현의 하늘에서 두 영웅은 가장 사랑스러운 아침노을로…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의 뜨거운 땅에서 자라난 뿌리 깊은 나무로… 평안하게 보내는 매일 밤마다 하늘에서 비춰주는 밝은 별로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작가:김철 편집: 사진: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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