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후’제1서기의 장미빛 약속

― 로투구진 대기촌 제1서기 위래의 빈곤부축일기
날짜 2019-07-11 09:56:47 조회

낮에는 논과 밭을 다니고 저녁이면 촌민집 앞마당에 앉아 속마음을 나누고... 룡정시 로투구진 대기촌의 마을 골목길에는 그의 그림자가 자주 지나다닌다. 빈곤호가정의 구들에 가면 빈곤부축사업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있고 마을 아이들의 필기책을 보면 아이들이 리해하기 쉽게 정리해놓은 문제풀이 방법이 적혀져있다. 로투구진 대기촌 제1서기 위래(魏来, 34세), 그의 마음속에는 두개의 집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안해와 제 아이가 있는 집이고 하나는 대기촌입니다.”
로투구진 대기촌(大箕村)은 룡정시 남부에 위치했다. 룡정시구역과 비교적 먼곳에 떨어져있고 교통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촌구역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이 시작된 후 길림성인민검찰원은 선후하여 로투구진의 대기촌과 사수촌(泗水村)의 빈곤부축책임단위로 되였다. “사업에 참가해서 목표도 세우고 자신감 있게 일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다 몇년 전 원에서 빈곤부축간부를 도급촌에 파견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상급에서 저를 찾아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며칠간 고민을 했었죠. 생각 끝에 ‘위임장’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2017년 7월, 도시에서 농촌으로, 기관단위 판공실에서 농촌의 촌부로... 위래는 성인민검찰원 철도분국의 과원 신분에서 로투구진 대기촌의 빈곤부축 간부로 변신했다. 당시 위래는 주요하게 사수촌 제1서기 왕리빈을 도와 빈곤부축 사업을 하는 것이였다. “처음 촌에 왔을 때 집집마다 방문조사를 진행하고 빈곤부축 자료를 작성했습니다. 매일이다싶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사이도 없이 10시간이 넘게 일했습니다.” 농민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알아갔고 그들을 도와 밭갈이부터 작물재배를 했다. 어느새 양복차림이였던 복장은 작업복으로 바뀌였고 시간이 흘러 위래도 농민들 속에 녹아들었다.
빈곤부축 사업에서의 우수한 표현과 사업의 수요로 위래는 2018년 3월, 빈곤부축간부에서 대기촌의 제1서기의 직책을 맡게 되였다. 새로운 도전과 함께 더 큰 책임이 그에게 주어졌다. 대기촌에 정식으로 주재하기 전 위래는 자신만의 마을 건설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집체경제를 틀어쥐고 산업을 통해 관광향촌을 건설하겠다는 그림이였다. 하지만 정작 촌에 와서 사업을 전개해보니 얼마 안돼 자신의 들끓었던 열정과 계획은 현실에 의해 무참히 막힌 것을 느꼈다.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했고 농후하지 못한 인문풍정으로 인해 경쟁력으로 될 만한 것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실제로부터 출발해 전통우세였던 과수재배업을 기반으로 한 촌집체경제와 촌민의 공동치부를 이끌어내는 것이였다.
촌민이 부유해지는 것은 지부가 관건이고 지도부대오가 관건이다. 외부의 자원을 리용하고 내부의 힘을 길러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그는 대기촌에 ‘앞장서 나서는 사업대오’ 건설의 필요성을 느꼈고 촌지도자대오를 튼튼히 했다. 촌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 단계는 대상건설에 주력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대기촌은 성검찰원의 ‘세가지 돕기’의 도급촌이였습니다. 촌의 기초시설 건설은 비교적 좋았고 일정한 산업대상도 있었습니다.” 산업대상이 지속가능하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위래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브랜드+품질’의 전략을 시도해 큰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무엇보다 촌민들의 관념을 바꾸는 일이 가장 애를 먹었다고 위래는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는 하나도 모르고 도시에서만 사업해온 젊은 친구를 어떻게 믿고 따르겠습니까? 게다가 투자를 해서 리해도 잘 안되는 브랜드를 만든다고 하니... 촌민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수확한 과일들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고 생각한 촌민들은 위래의 설득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과수원에 가서 일손을 거들면서 짬짬이 휴식시간이면 촌민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상품을 사고 팔리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소통을 시도했다. 하지만 투자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기만 하면 모두들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제가 먼저 투자하고 수익이 생기면 다시 돌려달라고 설득했습니다.” 위래의 진심을 보아낸 촌민들은 개인돈까지 내놓으면서 자신들을 치부의 길로 이끄는 데 감동받고 적극 동참해나서기 시작했다.
“‘술맛이 좋으면 골목이 아무리 깊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酒香不怕巷子深)’는 말이 있는데 이미 옛말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선전과 광고를 하지 않으면 판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선후로 국내의 대형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접촉을 시작하고 요구하는 조건을 전부 부합시킨 후 대기촌에서 생산한 자두, 사과배 등 여러 과일들은 예상보다 훨씬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1시간 동안 1,500상자라는 기록까지 달성하면서 정품화의 길을 개척해 전국의 25개 성, 자치구와 직할시에 팔려나갔다.
2018년, 위래는 촌주재 사업대와 함께 촌민들을 이끌었다. 대기촌은 연변주 종합성적 제1위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전 성 9045개 행정촌중 두각을 나타내며 길림성 전자상거래시범촌으로 평의돼 10만원의 발전기금을 상금으로 받았다. 전자상거래플랫폼의 발전 부축, 육성을 통해 위래는 온라인으로 대기촌의 질 좋은 농산물들을 전국에 판매해 농업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오프라인으로는 그가 직접 농특산물을 들고 전시판매회를 전전하며 물건을 팔았다.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 없어 처음에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우리 촌의 물건이 가격도 좋고 품질도 좋아서 그 자체가 경쟁력이라 자부하지요.”
정밀화 빈곤부축이 ‘관개수’라면 제1서기는 ‘수송관’ 역할을 한다. 그만큼 제1서기는 빈곤부축에 직접적인 결정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위래는 촌마을의 빈곤호가정을 일일이 방문하고 면담을 통해 그들이 빈곤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정밀한 빈곤해탈 계획을 제정했다. 지난해 5가구의 10명을 철저히 빈곤해서 해탈시키고 현재 빈곤호 1가정(1명)만 빈곤해탈을 앞두고 있었다.
군중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군중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실제적인 일을 하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도 빈곤해탈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위래는 생각했다. 마을을 조사하면서 그는 촌민들에게서 촌에 강이 하나 있는데 봄밭갈이와 가을걷이를 하는 필수경로로 마을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 강을 건너야 했다. 혹시 강우날씨를 만나면 차가 잠기고 전복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어 위래는 관련 부서와 조률해 자금을 적극 조달하고 교통부문의 관련 프로젝트를 따내 마을사람들이 안전하게 농사일을 진행할 수 있게끔 다리를 건설하여 마을과 촌민들이 치부로 통하는 길을 뚫었다.
마을의 칠순 로인 종홍생(钟洪生)은 대기촌의 빈곤호였다. 2018년 4월, 나라의 ‘빈곤해탈 난관공략’ 호소에 앞장서 주동적으로 빈곤모자를 벗으려고 평소 농사와 더불어 닭도 기르고 전기용접과 뜨락또르 수리 등으로 돈도 모으며 치부를 꿈꾸고 있었다. 작년 여름, 위래는 종홍생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던중 4년 동안 받지 못했던 품삯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온 것을 알게 되였다. 료해해보니 로인은 마을 주민 몇명과 함께 전기용접일을 맡아했는데 완공 후 다른 사람의 품삯을 로인이 미리 대신 지불했다고 했다. 돈 받으러 사장을 찾아갔을 때 사장은 이미 사라진 터라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비록 5000원이라는 크지 않은 액수지만 칠순의 종홍생 로인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였다. 돈을 꼭 찾아드리겠다고 약속은 해놨지만 사라진 사장의 이름, 련락처조차 모르고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곧바로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로인이 기억하고 있었던 마을과 물건을 들여왔던 공장을 몇번씩 드나들며 수소문한 결과 사장의 이름과 련락처를 어렵게 알아냈지만 상대방은 이미 출국한 상태였다. 다행히 위챗으로 겨우 련락해 중재에 나섰지만 외면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거듭한 끝에 상대방도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종홍생 로인이 맡았던 일은 기술문제로 시공에 차질이 생겼고 그 보상을 원인으로 사장은 품삯을 지불하지 않으려 한 것이였다. 올해 1월 8일, 반년간의 조률을 통해 위래는 로인이 받아야 했던 5000원을 손에 쥐여주었다.
대기촌의 빈곤해탈사업은 이제 공고히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어서 위래는 촌간부에 대한 선발과 빈곤해탈사업 양성에 관련된 사업을 추진해 촌민들로 하여금 지속가능한 치부의 힘을 길러주어 영원히 철수하지 않는 촌주재 사업대오를 남겨주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촌민들과 어울리며 한가족이 되여가고 밭과 농장에서 로동의 땀을 맛보고 치부로 통하는 길을 뚫고 촌민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등은 그에게는 수많은 ‘처음’이였다. 매번 마주한 ‘처음’에 허심한 태도로 배우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위래는 집에 안해와 사랑하는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더 자랑스럽고 떳떳한 가장이 되기 위해 오늘도 대기촌의 진정한 빈곤해탈을 위해 흘리는 땀은 더 가치있는 땀이 아닐가 생각된다.   
작가:김철 편집: 사진:장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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