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에서‘농민’으로 되기까지


날짜 2017-06-19 10:20:1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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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수입 수십만원의 회사를 접고 고향에 돌아와 영농을 시작한 젊은이가 있다. 그가 바로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촌민위원회 주임 겸 개산툰진희남옥수수전문농장 책임자인 현희남(조선족, 1985년생)이다.
       2004년, 고중을 마친 현희남은 대도시꿈을 안고 남행렬차에 오른다. 선후로 청도, 대련 등 도시에서 림시공으로 일하다가 후에 상해 어느 중한합자기업에서 점차 자기 자리를 찾는다.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과 배우기 좋아하고 항상 겸손하게 처사하는 태도가 회사 지도층의 인정을 받아 인차 회사의 요직에서 훌륭한 대우를 받게 된현희남,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가실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2008년, 년세가 많아진 부모님과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떨어졌다는 리유 하나로 현희남은 4년간 도시생활을 접고 연변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장악한 기술과 쌓은 경험, 루적한 자금을 투자하여 그는 연길시에 연길두과무역회사를 세우고 연길시 2차 가압설비 총대리자격까지 취득했으며 수년간 경영을 거쳐 회사는 수입도 안정되고 적지 않은 자금도 루적하게 되였다. 
       “솔직히 젊은 나이에 사업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자기 생활에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2014년 음력설 즈음, 부모님과 함께 설쇠러 고향마을에 왔다가 촌마을 도처에 걸려있는 귀향창업선전표어에서 힌트를 얻은 현희남은 자기의 리상과 포부를 안고 고향에 돌아와 창업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였다. 
       전형적인 조선족마을인 선구촌은 여느 조선족촌들처럼 대부분 청장년이 외출하고 로력이 결핍한 데다가 토지마저 거의 외지인들에게 도급준 상태였으나 대신 생태환경과 농업발전전망이 좋은 특점이 있었다. 창업항목을 선택하기 위해 현희남은 한동안 논두렁과 밭이랑 사이를 오가면서 마을의 재배정황을 조사하고 경험 있는 재배호에 찾아가 경험담을 요청하면서 신들메를 조였다. 인차 개산툰진정부의 지지와 지도하에 현희남은 촌의 67헥타르 토지를 도급하여 규모화, 기계화, 전문화 옥수수재배기지를 건립하였다. 
       시작은 언제나 쉽지 않은 법이다. 옥수수종자 선택에서 문제가 생겼는가 하면 재배기술이 숙련되지 못해 실수를 거듭했고 병충해가 생겨도 효과적인 처리를 할 수 없는 등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로 첫해 수확은 예상보다 많이 적었다. 촌민들도 현희남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기 시작했다. 경험도 없는 젊은이가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땅을 다루자니 실패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고 지어 부모님들마저 잘 나가는 사업을 접고 돌아와서 쓸데없는 고생을 찾아한다며 속을 태웠다. 
       “첫해 돈을 벌지는 못해도 결국 믿진 건 없었는데 부정적인 소문들이 많이 돌았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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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배기술이 약한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이때 진정부 농업기술보급소의 사업일군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정황을 료해하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주면서 방법을 대주었다. 전문기술자들의 지도와 추천하에 현희남은 룡정시에서 조직한 농업기술양성반과 신형 직업농민학습반에 참가하고 자체로 학습을 하면서 과학적으로 농약비료를 치고 병충해를 제거하는 관건적인 기술절차를 장악하였다. 
       2015년, 현희남이 재배규모를 확대하고 전문농장을 일떠세우면서 재기를 꿈꿀 때 진정부에서 재차 희소식을 전해왔다. 룡정시가 농촌금융종합개혁시험구로 인정되는 계기를 빌어 토지수익보증대부금 100만원을 해결해주었던 것이다. 
       “거기에 진정부의 토지도급지지정책으로 농장 토지면적도 200여헥타르로 늘어났습니다. 진에서 해결해준 대부금으로 자동옥수수수거기와 자동파종기 등 농기계까지 구매하고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현희남은 인터넷, 위챗 등 플랫폼을 다양하게 리용하여 농장을 선전하면서 옥수수판로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였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고 2015년 현희남의 전문농장은 판매액 130만원에 순수입 60여만원이라는 자랑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몇년간의 노력을 거쳐 현희남의 전문농장은 점차 정규화궤도에 들어섰다. 외지에서 일하던 친구 3명도 고향에 돌아와 그의 전문농장에 가담했다. 현희남은 마을의 곤난호, 재배호들을 동원하여 토지주식의 방식으로 농장에 가입시킨 후 대신 경영관리하는 형식으로 주변 50여호 촌민들의 수입을 크게 제고시키기도 했다. 
       2016년, 촌의 기바꿈사업이 시작되자 촌민들은 자기들을 이끌어 치부의 길로 나아가는 현희남을 촌민위원회 주임으로 추천했다. 촌민들의 믿음과 기대 앞에 현희남은 재차 어깨가 무거워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책이 좋고 정부의 지지도 크고 또 많은 항목들이 우리의 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귀향창업자들을 동원해서 우리 산업을 부단히 확대할 예정입니다.”
       자기와 같은 젊은이들을 귀향창업으로 이끌고 촌민들과 손잡고 전문농장을 부단히 발전시켜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고향건설에 이바지하련다며 현희남은 신심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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