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본 잡지사 기자는 올해 ‘천인계획’인재모집프로젝트 일원으로 임직 전 강습반에 참가한 김 성휘 대졸생(25살)과 인터뷰를 갖고 모두가 선망하 는 북경의 생활을 접고 왜 편벽한 연변에 돌아와 취 직하는가와 관련해 그의 속심을 들어봤다.
고향의 급속한 발전은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결심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주지하다싶이 지속적인 국가의 우대정책, 고속철도 개통은 연변지역이 외 부자금을 유치하는데 편리를 제공하였다.
또한 연 변지역이 최근 몇년 실시한 귀향창업 격려정책, 귀 향취업에 대한 지원정책은 연변지역의 인재류실문 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발전에 생기와 활력을 부여했다. 지금의 연변은 예전의 연변이 아 니다. 연변에 돌아와 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 니다. 오히려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님의 설득이 귀향취직에 큰 역할을 했다. 부모님은 기관사업일군으로서 20여년 동안 자기의 일터를 묵묵히 지켜왔다. 아이는 부모님의 거울이 다. 일터에 대한 부모님의 진지함, 부지런함과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큰 영 향을 끼쳤다. 고향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아주 신성 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애향심이 마음속에 간직돼있은것 같다. 그리고 매번 방학이 끝나 대학으 로 돌아갈 때마다 보았던 부모님의 아쉬움 가득한 눈빛과 저를 꼭 잡아주었던 따뜻한 손길이 큰 감동이였고 애석함이였다. 이 세상에는 백가지의 선(善)함이 있고 그 첫번째가 효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들 과 동고동락하고 싶었고 그들이 년로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돼주고 싶었다.
북경에 있는 4년 동안 실습도 했고 구직도 했 다. 그리고 기쁨도 느꼈고 행복한 적도 많았다. 하 지만 부모님과 고향을 떨어져있으면서 마음 한 구 석이 항상 시려났다. 북경은 나에게 더욱 높은 월급 을 줄 수 있었고 나에게 더욱 높은 무대를 마련해줄 수 있다. 하지만 북경에서 생활은 언제 뒤집어질지 도 모르는 돛배와 같았다. 안정감이 없었다. 그리고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수가 없었다. 숨막히는 경쟁구조와 이리저리 치이는 생활은 결 코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였다. 물론 이러한 생활 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변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천인계획’이라는 기회를 잡 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부모님의 곁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며 고향의 친지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돼 서 다행이다.
향후 사회의 초년생, 직장의 새내기로서 실천 능력과 실무능력을 높이기 위해 예전에 열심히 공 부했던 그 마음, 그 맵시로 부지런히 노력할 것이 다. 그리고 뛰여난 실적으로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과 고향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