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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렬씨 “나누면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날짜 2017-06-18 10:47:4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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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봄바람과 달리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안아줄수 있는 그런 사람의 따스함이 그립다.
나 아닌 다른이를 위해 살아간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린 숭고한 삶을 살았던분들을 우리는 위인으로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도 그 리유일것이다.
비록 륙십을 넘긴 나이지만 남을 먼저 생각하 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팍팍한 현실에 더욱 빛이 나는 사람일것이다.
오늘 만날 주인공은 연길시 철남에 위치한 장 수종합문진부 최형렬원장이다. 사회약소군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인술을 펼치는 그가 나누는 삶은 어떤것일가? 어떤 보람이 있을가?
최원장의 솔직한 스토리를 들어보고싶어 그의 일터를 불쑥 찾았다. 해살이 부서지는 창가에서 수 줍은듯 미소지으며 인사를 하는 최원장의 목소리 에는 마치 외진 곳에서 처음 보는 의사선생님의 상냥함이 스며든 소박하면서도 랑랑한 힘이 배여있었다.
 
인술을 펼쳐가는 원장
“흙수저”로 태여난 최원장은 어려서부터 남다 른 승벽심을 가지고있다. 하여 그는 소학교때부터 학습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고 학교의 각항 생활에 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첫패로 영광스럽게 소선대 원에 가입했다. 지금도 당시를 회억하면 자긍감으 로 넘친다는 최원장, 당시 신발도 없어 소선대원입 대식에 참가하기 위해 20여리 상거한 학교를 맨발로 걸어갔다고 했다.
이후로 부모님이 문화대혁명때 반혁명현행분 자로 투쟁을 받을 때도 하학후면 산에 올라가 땔나 무를 해왔고 어려운 생활에 보탬을 주려고 벼짚가 마를 짬짬이 짜면서 강한 생활욕을 보였다. 그리고 방학때면 형님과 함께 산에 가서 땔나무를 했는데 주변사람들이 부림소를 빌려주지 않아 인력으로 발구를 끌었다는 최원장, 이러한 생활고와 시련이 강한 의지를 마련해주는 밑거름이였다고 한다.  최 원장의 학업길은 가히 국가보조에 의거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지금도 당의 은덕에 목메인다는 최원장, 그의 피타는 노력으로 그는 고중에서 선참 공청단에 가입하는 영광을 안았고 마을의 영 예를 빛냈다.
고중을 졸업한후 그는 당시 룡정진 룡해대대 위생소에서 근무하였다. 의사가 되려면 열정만으로 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의학학습에 남다른 열정 을 쏟았다. 그는 선후로 룡정지구 의사학습반, 연길 현의사학습반, 려명대학 의학전공반, 상해중의학원 통신반에서 리론학습과 실천경험을 쌓으면서 후날 훌륭한 의사로서의 덕목을 쌓았다.
한편 그는 촌의 여러 활동에서 두각을 보이면 서 촌의 공청단총지서기, 민병련 정치지도원을 겸 하면서 룡해대대의 “명인”으로 소문났다.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된후 그는 선참으로 연변 의학중등전문학교에 입학했고 이후로 연변의학원 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학습기간 뚜렷한 표현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는 영광도 안았다.
학업을 마친 그는 국가의 배치대로 선후로 룡 정시 덕신향위생원, 동불사진위생원을 전전하면서 사경에 처한 환자 수백명을 사경에서 구해내여 당대의 “화타”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이후 동불사진위생원 원장으로 발탁, 그는 우선 향,진위생원의 락후한 이미지와 의료기술을 새로운 차원에로 승격시키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그는 우선 의료사 무실을 개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정부에는 그 럴만한 여력이 없었다. 하여 그는 자체로 뛰여다니 면서 병원기지를 심사비준받고 설계로부터 각종 인가를 받으러 혼자 뛰여다녔다. 주변의 친인척과 친구들도 몸이 상할가 근심했지만 동불사진 전역 주민들에게 쾌적한 의료환경을 마련해주어 당의 따사로움을 피부로 느끼게 하려는 그의 의지를 굽 힐수 없었다.
그러나 “복병”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진정 부에서 허락한 병원부지는 습지로서 농사군들마 저 외면하는 불모의 땅이였다. 그러나 최원장은 직 접 시공현장에서 로동하면서 병원동사자들의 지지 를 쟁취했다. 지금도 당시 정경을 회억하면 자긍심 을 느낀다는 최원장, 그러나 자금난 앞에서는 별도 의 방법이 없었다. 하여 종업원들을 동원하여 모금 하고 지어 아버지의 환갑때 받은 부조금까지 몽땅 병원건설에 먼저 투입했다.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 자 성위생청에 가서 자금을 쟁취하기 위해 발이 부 르트도록 뛰였다. 그의 열정에 감화한 주변 친구들 도 원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당시 최원장의 교통국 친구는 무료로 차량을 지원했다.
비록 병원청사 공사로 분망하였지만 환자들에 게 한치의 불편함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는 환자 진찰사업도 소홀함없이 진행했다. 이 기간 그는 수 백명의 위급환자를 사경에서 구해내면서 주변 촌 민들의 높은 긍정과 절찬을 받았다.
당과 정부에서도 그의 사업성적을 인정, 그는 선후로 룡정시 선진개인, 특수공헌상을 획득하고 병원도 룡정시 선진집단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으면서 자신의 화려한 사업경력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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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해 불태우는 제2청춘
최형렬원장은 2001년 영광스럽게 퇴직을 하였 다. 주변에서는 이제는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라고 했지만 아직도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의사의 손길 을 바라는 환자들을 위해 장수종합문진을 꾸렸다.
진찰업무 틈틈이 봉사활동이나 사회활동을 꾸 준히 해오고있다는 최원장, 수년간 내과, 산부인과, 외과 등 다양한 분야의 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활 동을 했다.
가장 인상깊은 환자가 없었는가는 기자의 물음 에 올해 83살난 황모할머니를 치유한 일이라고 했 다. 황모할머니 남편은 사평전역에 참가했던 로혁 명가이고 두 아들도 군인으로 전쟁에서 희생된 렬 사가족이다. 이 정황을 료해한 최원장은 비뇨계통 감염으로 인한 기관쇠퇴합병증으로 여러 큰 병원을 전전하며 완치를 보지 못하고 설상가상 경제난이 겹치면서 절망에 빠진 황할머니를 무료로 병이 완 치될 때까지 치유해 로인은 두번째 생명을 얻었다. 하여 황로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최원장을 “의술도 훌륭하지만 의덕이 최고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진료소에서는 해마다 이런 환자 10여명을 접대한다고 한다. 힘들지 않는가는 기자의 물음에 “1년 내내 봉사만 하는것도 아니고 그냥 틈 틈이 하는것이다. 의료봉사라고 해서 거창해보이지 만 일년을 놓고 보면 많지도 않다. 그저 그렇게 계 속하는거다. 내게 있어선 맘만 먹으면 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원장은 왕성한 진찰활동을 하는외에도 사회 공익사업에도 발벗고 나선다. 그는 해마다 사회적 으로 곤경에 처한 가정이나 학생들의 소식을 접하 면 언제나 소문없이 찾아가 선행을 해왔다. 하여 그 의 사적은 여러차례 언론매체에 보도되였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최원장은 국가의 은혜 를 입으면서 성장해온 일생이기에 한생을 당과 사 회를 위한 사업에 헌신하고싶을뿐이라고 했다.
삶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덤덤히 펼쳐 가고있는 그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면 과장 일가? 어찌보면 평범한 우리 이웃 같기도 한 년장 자이지만 나조차도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함께 나 누는 삶"을 최원장은 "일상"으로 일구어가고있다. 건강한 사회가 되는 첫걸음은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이들로 채워져야 할것이다. 오늘 만난 최원장을 통해 나는 시대의 희망이 느껴져서 반갑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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